양콩26. 09. 09.
어느 임차인의 마지막 이사
"대표님이랑 내가 벌써 10년 넘었지? 이사 갈 때마다 다 알아서 해줘서 아주 편하고 고마웠어. 언제 신세 갚으리다." 평소 점잖으시던 분이 그날따라 유독 넉살이 좋았다. 10여 년 전, 우연히 방문해 월세 계약을 맺은 게 첫 인연이었다. 그 후로 2년 혹은 4년, 집을 옮길 때마다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집을 보여주면 늘 한 번 쓱 둘러보고는 바로 결정했다. "아, 됐어! 어련히 알아서 좋은 집 보여줬겠어? 좋아 좋아." 처음 몇년은 어디선가 양계장을 한다며, 이따금 닭 몇 마리를 손질해 들고 와 사무실 앞에서 멋쩍게 쥐여주고 가곤 했다. 그 후 양계장이 잘 안되어 지방에서 양파 농사를 지을 때는 주말마다 올라와 양파 50개들이 두 자루를 사무실 앞에 풀썩 내려놓았다. 장아찌라도 담가 먹으라며 웃던 얼굴은 항상 정겨웠다. 그러다 만기 시점에 집주인이 집을 팔아달라 하여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이번에는 전셋집을 구해달라 하기에 아 드디어 목돈이 좀 마련되어 월세살이를 면하시는구나 반가워 새 전셋집을 찾아 계약해드렸다. 그리고 어느 날 점심 무렵, 대출 상담사를 불러 전세자금 대출을 신청하러 사무실에 들르셨다. 이삿짐센터 견적까지 함께 챙기느라 두 시간 남짓 머물렀는데, 그날은 유독 이런저런 속내를 털어놓으셨다. 하는 사업마다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는다는 이야기, 지금 함께 사는 사람은 재혼(사실혼 관계)인데 일이 안 풀릴 때마다 미안해서 마음이 두 배로 무겁다는 이야기, 나더러 혹 부부 사이에 틈이 생겨도 웬만하면 참고 양보하며 살라는 당부에다 새 사람을 만나 살아도 크게 다를 것 없고 오히려 첫 배우자가 더 가족 같을 때가 있다는 속 깊은 고백도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