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리의 추억
양콩읽는 데 약 2분
온 세상이 초록 천지로 변해가는 시절이 오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8년전쯤 인근 아파트 소형평형 전세가 나왔다.
계약 시에 보니 임대인이 50대 후반의 여성이었는데, 인근에서 블루베리 농장을 하고 있다고 했다.
블루베리 여사는 인근 아파트를 두채 소유하고 있었는데, 첫 계약을 성공시킨 후부터 그녀 매물은 쉽게 계약이 되었다.
어떤 집은 꼭 계약하고 싶어서 열심히 광고하고 수십번 들락거려도 안 되는가 하면, 또 어떤 집은 한두번만에 쉽게 계약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쉽게 계약이 연결된 의뢰인과는 나름 잘 맞는 인연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녀는 계약 시나 잔금 시에는 블루베리를 들고 올 때가 많았다. 여름에는 막 따온 싱싱한 블루베리, 다른 계절에는 냉동실에 얼려놓았던 블루베리.
여름철 블루베리 계절이 되면 자꾸 전화해서 농장으로 와라 싱싱할 때 따먹으라 했고, 그러면 가서 몇 팩을 사다가 주변에 나눠주곤 했다.
또 그녀가 블루베리 따느라고 식사 못해서 배고프다고 전화하면 빵을 사다 준 적도 있고, 농기계를 사서 버스 타고 왔다고 농장까지 태워다 달라 하면 바쁜 시간 쪼개 운송서비스까지 했다.

어느 6월. 계약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블루베리 여사가 들어오더니 손님들한테 블루베리를 사라고 영업을 하는 게 아닌가?
계약 중이라고 눈짓을 해도 '막 딴 블루베리가 더 좋니 어쩌니' 집요하게 영업을 해서, 결국 매수인이 10kg를 구매했다. 그녀는 블루베리 팔았다고 신이 났지만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손님이 돌아간 후에 냉랭한 표정을 지었더니
"아유 당신은 정말 까칠해...내가 아까 블루베리 팔면서 얼마나 눈치가 보이든지 으구...융통성이 없어가지고..."
하고 혀를 툴툴 차고 갔다...어랍쇼.
다음 날 출근하니 중개사무소 창에 '블루베리 판매' 라고 붙어있고, 블루베리 여사 핸드폰 번호가 적혀있었다.
흠....흠...참자..뭐 블루베리는 한철이니까....
며칠후 블루베리 여사가 전화로 말했다.
"OO부동산이 와서 블루베리 싹 쓸어갔어. 통도 크더라고..그러면서 집 팔 생각 없냐고 묻대...아유 당신도 그런 것좀 배워"
그리고 한달 후 블루베리 여사 소유 아파트의 만기가 된 임차인이 보증금을 증액하고 재계약서를 쓰게 됐다. 나는 그날 오후 큰 계약 건이 있어서 많이 예민하던 상태였다.
재계약서를 다 쓰고 나서 임차인이 중개보수가 얼마냐고 묻자, 블루베리 여사가 손사례를 치며 말했다.
"아이 중개보수는 무슨...여기 중개사님이랑 나랑 잘 아니까 수수료 안 줘도 돼요"
라고 하면서 임차인을 등떠밀어 보냈다. 사실 이 블루여사 계약 때마다 중개보수를 다 준 적 없고 항상 깎고 주거나 블루베리로 대신했다.
블루베리 여사가 임차인을 보내고 난 뒤에 점심을 사겠다고 했다.
나는 다음 계약 건으로 신경이 곤두 서 있던데다 중개보수를 밥으로 퉁치려는 게 못마땅해서 거절했다. 두번 정도 더 권유하는 걸
"내가 지금 속이 안 좋아서 점심을 못 먹을 상황이니 내일이나 모레 먹읍시다"
라고 돌려보냈다.
그러고 나니 직원이, 조금이라도 먹자고 자기는 배고프다고 조르길래, 내가 안 먹으면 직원 혼자 먹기 애매하지 싶어서 식사를 배달시켰다.
막 한숟가락을 뜨는데...블루베리 여사가 불쑥 들어왔다. 그녀는 내가 밥숟가락을 들고 있는 것을 보자 표정이 변하더니...
"나랑 밥먹는 게 그렇게 싫었어? 나한테 어쩜 그러니!"
하면서 문을 꽝 닫고 가버렸다.
헐...
그리고 그날밤에 문자로 섭섭하다 기분 나쁘다..사람 그렇게 안 봤다 등등,,,사랑싸움하는 것도 아니고 밤새 귀찮게 하길래.,
버렸다. 할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그게 3년 전쯤 일인데, 그렇게 연락이 끊겼다가 그 다음해 블루베리 철이 되자, 그녀에게서 블루베리 사라고 문자가 왔다.
이제 풀렸나? 해서 인근 중개사들 끌고 가서 블루베리를 보따리보따리 사들고 왔다.
그러나 그해 그녀 소유 또 다른 집 임차인이 만기가 되었다고 연락했길래 블루베리 여사한테 전달하려고 했더니, 전화를 안 받았다. 수신거부...문자 보내도 씹었다.
흠...다시 버렸는데...
작년 여름 블루베리 철이 되자 다시 문자메시지가 왔다.
블루베리 사세요. 1kg에 0000원 10kg에 0000원.
중개도 영업이고, 이 바닥에서는 나름 산전수전 이골이 난 "업자"인데, 블루베리 업계(?)는 못당하겠다. 하하하
사람은 과일 같다. 막 따올 때는 신선하고 달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싱싱함이 사라진다. 반면 영양 좋은 블루베리는 제철에만 반짝이고 그외 계절에는 기억으로만 남는다.
해마다 어김없이 블루베리 계절이 돌아온다. 때가 되면 블루베리는 피어나지만 예전의 달콤함은 추억으로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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