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집의 조건
너구리읽는 데 약 3분


구일 신혼집 외관.
나와 꼬북이(아내)는 올 7월 결혼했다. 지난해 9월 예식장을 알아보고 본격적인 결혼 준비에 돌입했다. 결혼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결혼식 준비에 7할은 신혼집 구하기다. 결혼 전까지 꼬북이는 서울 투룸에서 자취를 했고 난 용인 부모님 집에서 출퇴근을 했다.
우리는 집이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역세권이 아닐수록 출퇴근이 고달프다는 점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용인에서 광화문까지 출퇴근했던 나는 광역버스 안에서만 하루에 3시간 30분을 보낸다. 도보 시간까지 감안하면 출퇴근에만 하루에 4시간을 쓴다. 업무상 저녁 미팅이라도 있는 날에는 버스가 끊겨 택시를 잡아야 할 때도 많다. 광화문 인근에서 용인 집까지 택시비만 4만~5만원의 비용이 든다. 그 돈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집 평수는 포기해도 역세권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꼬북이 역시 본가는 평택이라 이런 출퇴근 고달픔을 잘 알고 있어 나의 생각에 동조했다.
사실 나는 신혼집을 금방 구할 줄 알았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축빌라 정도면 신혼생활에 큰 지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둘이 모은 자금에 적당한 수준의 대출을 받으면 구할 수 있는 집의 조건은 3억 5000~4억 5000만원대 전셋집이었다. 이 자금 선 안에서 역세권 인근에 신축 빌라 전세 매물은 네이버 부동산으로 대충 검색해 봐도 꽤 많은 편이었다.
문제는 욕심이다. 부동산을 통해 신축 빌라 매물 몇 집을 둘러봤다. 꼬북이가 자취를 하던 까치산역 인근에서 주차장과 엘레베이터까지 갖췄으면서도 역세권인 좋은 집을 발견했다. 방도 3개였다. 전세가는 3억 2000만원이었다. 거실과 주방이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집을 둘러보며 우리 둘은 "생각보다 괜찮네"라며 만족해했다.
그런데 왜일까. 부동산 중개인이 "계약하시겠어요?"라고 물으면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건 꼬북이도 마찬가지였다. "생각 조금만 더하고 연락드릴게요"라고 중개인과 헤어지고 나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뭔가 아쉽지..?" 라며 다른 집도 더 찾아보자고 결심했다.
처음 생각은 '역세권 집을 구했으니 이만하면 됐다'였지만 집을 보면 볼수록 욕심이 생겼다. 기본 조건인 역세권이 충족되자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차장 컨디션과 동네 분위기, 방의 개수, 거실의 크기 등 별로 고려하지 않았던 부분들이 중요해졌다. 나는 항상 부모님과 함께 살아 집을 따로 구해본 적이 없다. '아 이런 게 집을 구할 때의 마음이구나' 싶었다. 하나의 조건 만으로 집을 선택하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짓임을 깨달았다.
구축아파트를 알아보며 자연스럽게 전세가가 저렴한 구로로 발길을 돌렸다. 우리는 개봉역, 오류동역, 구일역 인근 구축아파트들을 꾸준히 돌아봤다. 우리의 자금 조건에 맞는 아파트는 대부분 지은 지 30년 이상 된 구축아파트밖에 없었다. 그래도 역세권 아파트만 구한다면 만족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오류동역에 위치한 28평 아파트. 베란다와 화장실 조건 등이 마음에 들었지만 근저당이 잡혀 포기했다.
그러다 또 한 가지 절대적인 조건에 꽂힌 계기가 생겼다. 오류동역에 위치한 28평 아파트였다. 방 3개에 화장실 2개. 집주인이 최근 리모델링까지 마쳐 내부는 너무 깨끗했다. 전세가는 3억6000만원이었다. 아직 입주자를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상했다. 등본을 떼보니 답이 나왔다. 근저당이 잡혀있었다. 전세가보다 많이. 빠르게 이 집을 포기했다. 그런데 화장실 2개인 집을 보고 나니 1개인 집을 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내 마음은 화장실 2개에 꽂혔다.
어느 순간 방 3개는 기본 조건이 됐고 화장실이 1개인지 2개인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화장실이 2개였을 때의 편리함은 아마 살아봤던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1개일 때와는 삶의 만족도가 천지 차이인 것을.
구로1동 부동산에 방문하자 중개인이 인근 구축아파트를 보여줬다. 방 3개, 화장실 1개에 내부도 구축아파트치고는 깔끔했다. 무엇보다 동네가 마음에 들었다. 이 지역은 여러 구축아파트단지들이 모여있어 상권이 잘 발달돼 있었고 동네도 조용한 편이었다. 인근에 초중고도 있다. 전세가는 3억 6000만원이었다. 다만 다소 빡빡한 구축아파트 특유의 주차장 컨디션과 화장실이 1개인 점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중개인은 "음 3억 5000만원 전세집이 인근에 있는데 한번 볼래요? 여기서 걸어서 5분 거리에요"라며 또 한 집을 볼 것을 권했다. 우리는 흔쾌히 따라 나섰다.

신혼집 입주 전 상태. 전 세입자가 집을 떠난 직후 찍은 사진.

신혼집 입주 전 상태.
지은 지 20년 정도 된 오피스텔형 아파트였다. 일단 다른 구축아파트들보다 주차장이 커서 마음에 들었다. 지하주차장도 구비됐다. 무엇보다 집이 마음에 들었다. 방 3개에 화장실이 2개였다!! 구일역은 걸어서 7분 거리였다.
다만 오피스텔형 아파트라 베란다가 없었다. 집 앞이 바로 서부간선도로라 창문을 열면 매우 시끄럽다. 또 꼬북이는 이 집의 갈색 우드 장판을 너무 싫어했다. 어르신들이나 좋아할 만한 벽지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속으로 결정을 마쳤다. 화장실 2개에 매료된 상태였다.
그날 밤, 꼬북이와 나는 상의 끝에 지금의 신혼집인 오피스텔형 아파트를 선택했다. 집주인이 도배를 새로 해준다는 조건으로 전세계약을 맺었다. 장판은 자비로 교체했다.

현재 신혼집 상태. 장판과 벽지를 새로 했다.


신혼집 화장실 2개의 모습.
결혼식 3개월 전인 3월에 미리 입주해 현재는 약 7~8개월 정도 거주 중이다. 창문을 열면 차소리가 시끄럽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아직 특별한 단점은 찾지 못했다. 이제 추워지기 시작하면서 외풍(베란다가 없는 형태)이 있는 정도가 단점이라는 단점이다. 그 밖에는 모든 부분이 만족스럽다.
전셋집이다 보니 몇 년 후에는 이 집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 주변에서는 벌써 아이가 생겼을 때를 고려해서 다음 집을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그때는 아마 학군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지 않을까 싶다. 또 지금은 전셋집이지만 평생 살 내 집 마련에 나섰을 때는 더 까다로운 조건들이 생기지 않을까. 집이라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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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4
오렌지쥬스과 · 2024년 11월 9일
저도 너구리님처럼 지금 괜찮은 집에 꽃혀서 저도 모르게 계속 그 조건에 맞는 집들만 찾게 되고 보게 되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도 너구리님은 조건에 맞는 괜찮은 집을 찾으셔서 다행입니다.
Obeisance · 2024년 11월 10일
뭔가 처음부터 조건이 좋은 거주지에서 거주하면, 눈높이가 확 올라가는 듯.
호라이즌 · 2024년 11월 10일
집 구하는 거 진짜 힘들죠.. 특히 아이계획 있는 신혼부부들은 더 신중하게 고르게 되는 것 같아요
헤일리 · 2024년 11월 11일
공감이 너무 됩니다.. 저도 이제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이겠죠 글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아아정복 · 2024년 11월 11일
진짜 요즘 신혼집 구하기가 너무 힘든거같아요
무슈 · 2024년 11월 11일
내집마련하는게 정말 어려운거같아요
쿠크다스 · 2024년 11월 11일
전세를 구하려면은 정말 근저당이나 가압류 등 뭐가 잡혀있는지 꼼꼼하게 읽어보고 결정해야 하고 그리고 특약을 꼭 추가로 넣어야 합니다 정리를 잘해주셨네요
훠이 · 2024년 11월 11일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는게 더 어렵자나요ㅠ 지기가 원하는 것이 충족되는 집도 별루 없구요..진짜 찾기 어려워요ㅠ
카트리나 · 2024년 11월 11일
글이 너무 재밌어요
제가 처음 집을 구할 때를 돌아보는 것 같아요
화장실 2개에서 화장실 1개로는 절대 못가죠 ㅎㅎㅎㅎ
산사람 · 2024년 11월 11일
첫 전세집 구할때가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이사할때마다 경험치가 쌓여서 조금씩 더 좋은 조건의 집으로 갑니다만
돈도 더 열심히 벌어야 된다는 함정 ㅋㅋㅋㅋㅋ
브라이언 · 2024년 11월 11일
다음 집은 꼭 지금보다 상급지역으로 옮기시길 바랍니다
사람 특성이 한번 눌러앉은 곳에서 쭉 사는 경우가 많아서 애 생기기 전에 꼭 지역 이동해야합니다
부울경 · 2024년 11월 11일
어우 신혼인데 화장실 2개는 필수죠
해축린이 · 2024년 11월 11일
전에 살던 구축 아파트는 지상 주차장이어서 비오면 쫄딱 젖고 눈오면 아침마다 차에 쌓인 눈 치우느라 고생했어요. 그 뒤로는 무조건 지하주차장 봅니다 ㅋㅋㅋ
집고양이 · 2024년 11월 11일
진짜.. 결혼의 7할이 집 구하기라는거.. 공감합니다 ㅜㅜ
펨맨 · 2024년 11월 12일
살아있는 경험담을 본 거 같아서 생생한 도움이 되네요
부동산입문 · 2024년 11월 13일
신혼집 진짜 신중하게 선택해야죠 ㅠㅠㅠ 너무 어려운거같아요 ..아무래도 .. 진짜 첫집이다보니까 더 그렇죠
마가린 · 2024년 11월 27일
최근에 올려주신 글 보다가 공감도 되고 재미도 있어서 다른 글도 궁금해서 읽어보러 왔습니다.
확실히 우선순위를 정하고 집을 보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실제 사진까지 같이 찍어서 올려주시니까 이해도 팍팍되고 재밌습니다 다음글도 빨리 보고 싶습니다
미니멀부자 · 2024년 11월 28일
정말 신혼집. 집 구하는게 이렇게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는듯 합니다 ㅠㅠ 어렵죠..
베테랑킴 · 2024년 11월 28일
집 구한느게 7할은 된는거 같은 기분입니다 ㅠㅠ 참 제일 큰 숙제에요
오늘도화이팅 · 2024년 11월 29일
맞아요.. 집 구하기가 진짜 힘든 것 같습니다.. 저도 요즘 신혼집 구하는데 너무 생각이 많아져요
말차우유 · 2024년 11월 29일
그래서 첫 시작이 중요하다고 하나 봅니다.. 저도 여유만 되고 서울권에서 시작하고 싶네요
스위티자몽 · 2024년 11월 29일
제 친구도 서울권 전세 살다가 옆세권 매수해서 들어갔는데 다시 서울로 돌아가고 싶대요...
훠이 · 2024년 11월 30일
집하나 잘못고르면 너무 힘들거 같아요ㅠ 근데 금액때문에 힘드네요
새우깡 · 2025년 10월 11일
각 신혼부부마다 우선이 되는 요소가 미묘하게 다른게 재밌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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