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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양콩읽는 데 약 3

"선배님!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는데요. 그럼… 제가 이긴 거죠?"

허공을 가로지르는 눈발 사이로 나른한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오후,

후배 중개사가 펑펑 울며 전화를 걸어왔다. 그날은 그가 연루된 중개사고 소송의 선고일이었다.

사건은 3년 전, 조그만 빌라 전세 계약에서 시작됐다.

계약 자리에는 언제나처럼 소유자의 남편이 착석했다. 그는 아내의 신분증과 도장을 들고 와 서명·날인을 했고, 계약금도 받아갔다. 잔금 날에는 이사 나가는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고, 남은 차액을 챙겨 돌아갔다.

그 모든 과정이 반복적이었으며 원활했다.

그리고 2년 뒤 만기 일.

임차인이 이사 준비를 하며 소유자인 아내에게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자, 돌아온 말은 청천날벼락이었다.

"저랑 직접 계약하신 거 아니잖아요. 그리고 저, 남편이랑 이혼한 지 오래됐어요."

소스라치게 놀란 후배는 인근 중개사무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확인했다.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그 집은 항상 남편이 와서 계약했어요. 소유자인 아내는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계약과 잔금 때마다 대리로 나와 중개사들 사이에선 '보증수표'처럼 통하던 남편.

그러나 그가 이혼과 동시에 모든 계약을 부인하면서 사건은 법정으로 흘러갔다.

사고가 생길 때, 관행은 가장 먼저 발목을 잡는다.

'그렇게 될 일은 결국 그렇게 된다'는 인디언 속담처럼, '부부니까 괜찮겠지!'라는 오랜 믿음이

진정한 소유권자 확인을 소홀히 한 과실로 돌아온 것이다.

임차인은 지인 변호사를 통해 후배 중개사를 고소했다.

개업한 지 채 2년도 안 된 후배는 울먹이며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일단 진정시키고 남편을 찾아가 '표현대리' 입증 자료를 최대한 확보하라고 조언했다.

며칠을 허탕치다 가까스로 만난 남편의 말은 짧았다.

"이혼한 건 맞아요. 그런데 지금은 돈이 없어요. 방법이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어쩔수없이 1년 반에 걸친 소송이 이어졌다.

숱한 불면의 밤을 보낸 후 손해배상 책임과 더불어 어느 정도의 벌금형이 떨어질거란 예상으로 법정에 섰고, 떨리는 마음으로 선고를 들었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표현대리가 인정된 것이다.

결국 이제는 남이 된 그들이 함께 보증금을 마련하여 임차인에게 반환해주는 절차를 거쳤다.

비슷한 일은 5년 전에도 있었다.

이번엔 남편 명의의 집이었은데 배우자인 아내가 계약과 잔금에 모두 참석했다.

전세보증금으로 기존 대출을 상환하고 감액등기 하기로 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1년 뒤, 집은 경매로 넘어갔다. 대출금은커녕 이자조차 연체된 상태였다.

이 집 역시 계약 및 잔금 시점과 달리 부부가 이혼 상태였다.

명의자인 남편은 "아내에게 대리권을 준 적 없다"고 주장했고, 중개사는 위임장이나 위임 녹취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임차인은 공무원이었고, 소송 끝에 중개사는 또 다시 승소했다.

역시 표현대리가 인정되었다. 변호사 비용까지 모두 돌려받았다.

사안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법원은 종종 '부부라는 외형' 자체를 신뢰 보호의 근거로 본다.

그래서 위임장이 없어도 표현대리가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판결이 나오기까지, 그 시간의 공포와 불면, 불확실한 미래와 정신적 소모는 누구도 대신 겪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부부 사이에는 웬만하면 표현대리가 인정되더라"는 말은 결과로만 기억해야지,

절차를 생략해도 된다는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부부 사이에는 주거 임대·매매·처분에 관한 일상가사 대리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배우자 중 한 사람이 대리로 계약에 참여할 경우, 반드시 명의자와 직접 통화해 위임 의사를 확인하고

그 통화 내용을 녹취하거나 문자로 남기며, 모든 거래대금은 명의자 통장으로만 입금하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요즘 들어 부동산 소송은 늘고, 이혼율도 함께 치솟는 듯하다.

중개업을 오래 하며 느낀 것 하나는 이것이다.

가정의 평온에는 어느 정도의 경제적 안정이 필요하다는 것.

물론 돈이 많아도 불행한 부부는 있지만, 경제가 무너질 때 부부 관계에 가장 먼저 금이 간다는 사실만큼은 현장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왔다.

그리고 그 금이 어느 날 계약서 위까지 올라오는 순간, 또 다른 누군가는 치명적인 파편을 맞게 된다.

그러므로 부동산 거래에 있어서는 '그들'이 무슨 관계인가 보다 원칙대로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가를 주목해야 한다.

댓글 8

  • 오늘을살자 · 2026년 1월 14일

    이래서 유도리없이 FM으로 해야하는 이유인가봐요 진짜 맘고생하셨겠다 ㅜ

  • 아파트사우루스 회원 · 2026년 1월 14일

    실제 현장에서 겪은 이야기라 그런지 읽는 내내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였어요 결과적으로 승소하셨다지만 그동안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하셨을지 말로 다 못 할 것 같네요 정말 고생하셨어요ㅜㅜ

  • 팽오리 · 2026년 1월 15일

    이런 이야기들 보면 남의일같지가 않아요ㅠ

  • 호잇 · 2026년 1월 23일

    ㅠㅠ 너무 고생하셨어요 글만읽어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네요

  • 스위티자몽 · 2026년 1월 24일

    이혼 소송할 때 양육권 문제와 더불어 재산 분할 문제가 가장 힘들다고 하던데, 이혼율이 늘수록 부동산 소송 문제도 계속해서 늘어날 것 같아요. 돈 때문에 이혼하는 부부들 많더라고요.

  • 말차우유 · 2026년 1월 24일

    요즘 주변을 돌아보면 이혼하는 부부들이 전보다 더 늘었다는 걸 느끼게 돼요. 제 친구들 몇 명도 그렇고, 이혼도 늘고 재혼도 늘었다는 게 현 상황이네요.. 근데 갈수록 더 늘 듯해요..

  • 와사비 · 2026년 1월 31일

    오 부부 사이에는 위임장 없는 거래도 인정하는 판례가 있군요

  • 새우깡 · 2026년 1월 31일

    그렇다고 부부라고 다 되는 건 아니겠지만 이런 판례가 나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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