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부동산이에요. 잘 지내셨죠? 다름이 아니라… 집 주인분이 집을 급매로 내놓으셨어요. 혹시 매수하실 생각 있으세요?”

얼마 전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집주인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내놨는데, 세입자인 우리에게 먼저 살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는 전화였다.

나는 일단 생각을 좀 해보겠다고 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전세로 살고 있는 지금 집을 매수한다는 건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다.

내가 살고 있는 전셋집은 서울 구로 1 동에 있는 아파트형 오피스텔이다. 전세금은 3억7000만원. 내 집도 아닌데 2년 넘게 살다 보니 어느새 ‘우리 집’이라고 부르는 게 자연스러워진 곳이다. 2024년 3월 이 집에 처음 들어왔고 올해 3월 전세계약도 한 차례 연장했다. 계약대로라면 2028년 3월까지는 더 살 수 있다.

이 집의 생활은 만족하는 편이다. 아파트형 오피스텔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겨울이면 유난히 집 안으로 찬 기운이 스며든다. 그래도 못 견딜 수준은 아니다.

지하철역 구일역이 가깝고 바로 앞에 서부간선도로가 있어 차를 몰고 타 지역으로 진출하기도 편하다. 바로 옆 안양천에서는 걷거나 뛸 수 있고, 동네에는 생활인프라가 잘 돼있다. 또 생각보다 동네가 너무 조용해서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둘이 살기에는 집이 넉넉하다. 방이 3개에 화장실이 2개다. 방이 3개다 보니 각자의 공간도 생겼다. 결혼해서 함께 살아보니 부부에게 각자의 방이 있다는 게 생각보다 중요했다. 사랑하는 사이에도 문 하나쯤은 필요하다. 적어도 우리 부부는 그렇다.

그래서 가끔 꼬북이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애 없으면 그냥 여기서 계속 살아도 되겠다.”

“나도 좋아. 여기 편해.”

그런데 ‘살기 좋은 집’과 ‘사기 좋은 집’은 전혀 다른 문제긴 하다. 우리가 처음 전세계약을 했을 당시 이 집의 매매가는 대략 5억~6억원 사이였다.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시세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동안 주변 구축 아파트들의 몸값이 조금씩 올라가는 것을 구경하는 사이 우리 전셋집 시세는 제자리걸음에 가까웠다. 생긴 건 아파트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엄연히 아파트형 오피스텔이다. 부동산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큰 모양이다.

부동산 사장님은 그래도 한 번쯤 고민해보라는 듯 말을 보탰다.

“집주인분이 급매로 내놓으신 거라 싸게 나온 편이에요. 지금 전세금에서 한 1억원 정도만 보태시면 살 수 있어요.”

순간 마음이 흔들리긴 했다. 1억원을 어떻게 마련할 지부터 생각한 게 아니라, 이 집을 정말 사면 어떨 지를 먼저 상상해봤다.

우리는 아직 아이가 없다. 계획은 있지만 꼬북이의 직업상 일정 때문에 잠시 미뤄둔 상태다. 물론 둘 사이에는 나름의 합의도 있다. 최선을 다해보고 그래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면 거기에 너무 매달리지는 말자고 했다.

“그럼 그냥 우리 둘이 재밌게 살자.”

“여행이나 실컷 다니고.”

“그것도 괜찮지.”

구로1동 동네 풍경.

아이가 없다면 이 동네에서 오래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물론 TV 드라마에 나오는 신축 아파트를 볼 때면 둘 다 “우리는 언제 저런 데 살아보냐”며 장난섞인 푸념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당장은 크게 불만이 없는 상황이다.

이 집을 사면 그래도 서울에 내 집이 생기는 것이니 '새 집을 구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크게 줄진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 잠깐은 ‘그냥 이 집을 구해할까’ 싶었다. 어차피 계속 살고 싶은 집이라면 전세금을 빼서 다른 집을 찾아 헤매느니 차라리 내 집으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방법 아닌가.

그러나 이게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다. 내가 어느 날 “이 집이 너무 좋으니 무리해서라도 사자”고 선언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졌다. 가족들부터 뜯어말릴 것이다. “굳이 그 돈 주고 오피스텔을 왜 사?” 친구들에게 말해도 비슷한 반응이 돌아올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집은 단순히 먹고 자는 공간이 아니다. 한 가족이 가진 자산의 대부분이고, 노후대책이자 투자상품이며, 때로는 그 사람의 경제적 성취를 보여주는 성적표처럼 취급된다. 그런 나라에서 집값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 아파트형 오피스텔을 사겠다고 하면 “나는 여기 사는 게 너무 좋아”라는 말만으로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꼬북이부터 설득되지 않았다.

“근데 있잖아. 1억원 정도만 더 보태면 우리 이 집 살 수 있대.”

꼬북이가 나를 잠깐 쳐다봤다.

“에이~ 농담이지?”

그 한마디로 가족회의는 싱겁게 끝났다. 돌이켜보면 부동산 사장님이 매수를 권하면서도 목소리에 별로 힘이 없었던 이유 역시 비슷했을지 모른다. ‘좋은 집인 건 맞는데, 설마 세입자가 이걸 사겠어’ 정도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렇다. 안 사기로 했다.

부동산 공화국 대한민국에 태어났으니 우리도 언젠가는 집값이 몇억원씩 올랐다는 이야기를 한 번쯤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극히 세속적인 결론을 내렸다. 이 집을 사랑하는 것과 이 집에 전 재산을 거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꼬북이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았다.

“집주인이 바뀌어도 우리는 달라지는 거 없잖아? 계약기간까지 살고, 그때 또 연장하면 되지.”

“그런가?”

“그렇지.”

“그래. 그럼 고민하지 말자.”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며칠 뒤 평일 저녁, 집을 보러 사람이 왔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성분이었다. 우리 집을 관리하는 부동산 사장님과 다른 부동산 중개인도 함께였다. 아마 내가 살 의사가 없다고 하니 매물을 다른 중개업소에도 돌린 모양이었다.

현관문을 열어주자 여성분은 거실과 방을 차례로 둘러봤다. 그리고 몇 번이나 같은 말을 했다.

“생각보다 넓네요. 좋다.”

그 말을 듣는데 기분이 묘했다.

‘그렇죠? 우리 집 좋아요.’

속으로 괜히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라고 했을 때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싫다고 했던 집인데, 막상 다른 사람이 마음에 들어 하니 갑자기 아까워졌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하다.

더구나 집을 보러 온 여성분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사람, 투자하려는 게 아니라 여기 들어와 살려고 사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새 집주인이 실제 거주를 원한다면 적어도 지금 계약이 끝나는 2028년 3월 이후에는 우리가 이 집을 떠나야 할 가능성이 생긴다. 나는 막연하게 이 집에서 최소 6년쯤은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계약기간은 아직 한참 남았는데 갑자기 이별 통보를 미리 받은 기분이었다.

여성분이 돌아간 뒤 다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며칠 전에는 ‘이 집을 살까’를 고민했는데 이제는 ‘이 집을 떠나면 어디로 갈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집에서 2년 넘게 살면서 우리 부부의 눈높이가 제법 올라가 버렸다는 것이다.

“우리 다음 집은 어떻게 하지?”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꼬북이는 조건이 명확했다.

“난 집이 좀 좁아져도 괜찮아. 대신 무조건 역세권.”

나는 정반대였다.

“난 역에서 좀 멀어져도 돼. 대신 집은 좁아지면 안 돼.”

“왜?”

“답답하잖아.”

“역에서 멀면 출퇴근이 답답하거든?”

조건을 하나씩 붙이기 시작하니 더 답이 없어졌다. 직장에 다니는 동안에는 직주근접을 포기하기 어렵다. 지하철도 가까워야 한다. 이미 각방의 편안함을 알아버렸으니 방도 넉넉했으면 좋겠다.

화장실도 마찬가지다. 화장실 2개짜리 집에 살고 나면 다시 하나짜리 집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들었는데, 살아보니 그 말이 맞았다. 여기에 앞으로 아이가 생길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방 하나를 선뜻 줄이기도 어렵다.

그런데 서울에서 역세권에 방 3개, 화장실 2개인 아파트를 찾기 시작하면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에 찍히는 숫자가 갑자기 무서워진다. 지금과 비슷한 주거환경을 유지하면서 아파트로 옮기려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주거비는 크게 뛴다.

결국 지금 살고 있는 구로에서 더 찾아보거나 시세가 비슷한 금천·강서·노원처럼 상대적으로 선택지가 남아 있는 지역까지 지도를 넓혀봐야 한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서울 바깥까지 생각해야 할지 모른다.

결국 우리는 몇 가지 원칙이라도 정해두기로 했다. 2028년이 돼서야 부랴부랴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서로 싸우지 않으려면, 적어도 우리가 어떤 집을 원하는지는 미리 정해놓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첫 번째는 ‘무조건 지금 집보다 좋은 집’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금 집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전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당장 소유할 수 있는 집보다 조금 더 좋은 집을 빌려 살았고, 지난 2년 동안 그 편안함에 익숙해졌다. 방 3개와 화장실 2개, 역세권, 넉넉한 공간까지. 다음 집을 매매한다면 출발선부터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모든 조건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다는 생각부터 버리기로 했다. 신축이 아니어도 된다. 구축도 괜찮다. 역에서 조금 멀어지거나 집이 조금 좁아지는 것도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지금의 편안함 가운데 무엇을 포기할 수 있고 무엇만큼은 포기할 수 없는지부터 정하기로 했다.

두 번째는 집값보다 먼저 ‘대출의 한도’를 정하는 것이다.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을 보다 보면 이상하게도 처음에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가격의 집이 며칠 뒤에는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5000만원만 더”, “이 정도면 대출을 조금 더 받으면 되지 않을까” 하다 보면 어느새 처음 생각했던 예산은 사라진다.

그래서 반대로 해보기로 했다.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회사를 다닌다고 가정하고 두 사람의 월급과 생활비, 저축액을 먼저 계산해 매달 얼마까지 원리금을 갚을 수 있는지 정하는 것이다. 은행이 빌려줄 수 있는 돈과 우리가 마음 편하게 갚을 수 있는 돈은 분명 다를 테니까.

세 번째는 학군을 일단 조건에서 빼기로 했다.

우리는 아직 아이가 없다. 앞으로 아이가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중·고등학교를 걱정하며 지금부터 이른바 ‘명문 학군지’의 집값을 감당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아이가 생긴다고 해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까지는 시간이 있다. 그때 우리의 형편과 아이에게 필요한 환경을 다시 생각해도 늦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 글에서는 그 거리를 직접 재보려고 한다. 우리가 정한 조건과 예산을 들고 지도를 펼쳐, 지금 우리 형편으로 서울에서 현실적으로 살 수 있는 동네가 어디인지 하나씩 찾아볼 생각이다.

벌써부터 난관이 예상되지만 어쩌겠는가. 원하는 집과 가진 돈 사이에서 부딪히고 타협하며 답을 찾아가는 것, 그게 대한민국에서 내 집을 마련하는 과정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