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낡았는데 23억?… 미국 집값은 왜 그럴까
Easy 부동산 in the USA읽는 데 약 3분

처음 미국에서 렌트할 집을 보러 갔을 때였습니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의 레돈도 비치에 위치한 오래된 목조 주택이었는데요. 무려 설립 연도는 1912년이었습니다. "우와, 이렇게 오래된 집이 있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죠.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바닥에 깔린 오래된 카펫이 눈에 들어왔고 주방에는 진한 우드 톤의 캐비닛이 꾸려져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연식이 느껴졌죠. 한국이었다면 '과연 사려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집이었어요.
방 2개에 화장실 1개. 하지만 월 렌트비는 3800달러(현재 환율 기준 약 559만원)! 렌트비는 워낙 LA 카운티가 전반적으로 비싸서 그러려니 했는데, 문득 집값이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부동산 플랫폼에 등록된 최근 거래 가격을 살펴봤습니다. 가격은 155만달러(약 23억원)였습니다.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해안가의 주택 풍경. / 사진=픽셀
"1912년에 지어진 방 2개짜리 집이 20억원이 넘는다고?"
도대체 이 낡은 집이 왜 이렇게 비쌀까 싶었죠. 레돈도 비치라는 해안 입지와 생활환경, 그리고 안정적인 학군 수요가 겹치면서 해당 지역 전반의 집값이 높게 형성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집은 신축일수록 좋고 비싸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는데 이곳의 시장은 조금 다르게 작동한다는 것을 처음 체감한 순간이었습니다.

신축 아파트와 구축 아파트가 두루 발견되고 있는 한국 한 도시의 풍경. / 사진=픽셀
한국은 '신축', 미국은 '위치'
한국에서도 입지는 집을 고를 때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서울 강남 3구, 양천구 목동,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 수요가 몰리는 지역을 선호하는 흐름이 있죠. 평창동, 한남동, 성북동 등 전통적인 고급 주거지에서는 연식이 오래된 단독주택이라도 높은 가격이 유지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일부 상급지에 한정돼 있습니다. 대부분의 아파트 시장에서는 여전히 신축 여부와 단지 상품성이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고 주요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같은 지역이라도 구축과 신축의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경우가 많죠. 재건축이 기대되는 매물 역시 결국 '미래의 신축'을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미국에서는 기준이 조금 다르게 작동합니다. 부동산 업계에서 "Location, Location, Location(위치, 위치, 위치)"이라는 표현이 자주 쓰이는데요. 집의 상태보다 그 집이 어디에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미국 인구조사국의 미국 지역사회 조사(American Community Survey) 최신 통계에 따르면 자가 소유 주택의 중위 연식은 2024년 기준 42년입니다. 오래된 집이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기본값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낡은 집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왜 미국에서는 집이 낡았다는 점에 크게 개의치 않는 걸까요. 이는 단순한 취향의 차이라기보다 집을 바라보는 방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집을 완성된 상품이라기보다는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손보며 지내는 공간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페인트를 다시 칠하거나 바닥을 교체하고 주방과 욕실을 리모델링하는 일은 비교적 흔하게 이뤄집니다.
또한 미국에서는 건물보다 토지의 가치가 더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 낡지만 위치는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의 상태는 이후에 개선할 수 있는 요소로 보고 입지와 수요를 더 중요한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낡은 집이 기회가 되는 시장
미국에는 'Fixer-upper(고쳐서 가치가 올라갈 집)'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손을 보면 가치가 올라갈 수 있는 집을 의미하죠. 한국에서는 낡은 집이 리스크로 받아들여지기 쉽지만 미국에서는 오히려 가능성으로 해석됩니다. 현재 상태보다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에 주목하는 거죠.
지난해 글을 통해 미국의 '주택 플리핑(House flipping)'을 주제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글 원문: 싸게 사서 되팔기?! 미국의 ‘주택 플리핑’ 투자 전략). 낡은 집을 매입한 뒤 리모델링을 통해 가치를 끌어올리고 다시 매도하는 투자 방식입니다.
낡은 주방을 모던한 스타일로 교체하고 아일랜드 주방을 추가한다든지, 벽을 허물어 거실과 주방을 연결한 오픈 플로어 구조로 바꾼다든지, 욕실을 샤워부스 중심으로 재구성한다든지, 바닥을 카펫 대신 하드우드 등으로 교체한다든지 하는 작업을 통해 오래된 집을 새롭게 탈바꿈시킵니다. 외관 정비나 마당 관리 역시 집의 첫인상과 체감 가치를 크게 바꾸는 요소죠. 이렇게 리모델링된 집은 기존 가격보다 높게 책정됩니다.
이처럼 낡은 집은 단점이 아니라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여지로 받아들여집니다.

LA 내에서도 극명히 차이를 보이는 집값
제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주 LA 카운티는 미국 내에서도 집값이 비싸기로 유명한데요. 이 안에서도 입지에 따라 집값이 천차만별로 갈립니다. 미국 부동산 정보 플랫폼 리얼터닷컴(Realtor.com)에 따르면 4월 14일 기준 LA 카운티 주택 매물의 중간 가격은 약 95만달러(약 13억9774만원)입니다.
그런데 카운티 내 도시별로 중간 가격을 살펴보면 그 차이가 큽니다. 예를 들어 집값이 비싼 지역으로 꼽히는 말리부의 주택 매물 중간 가격은 585만달러(약 86억711만원), 베벌리힐스는 628만달러(약 92억3976만원)로 집계됐습니다.
LA 외곽 지역인 팜데일과 랭커스터는 비교적 신축 주택이 많음에도 중간 가격이 각각 52만5000달러(약 7억7322만원), 47만5000달러(약 6억9920만원) 수준에 머뭅니다.
결국 신축 여부가 아니라 입지와 수요가 가격을 나누는 기준이 되는 거죠.

학군과 계획된 주거 환경으로 잘 알려진 캘리포니아 어바인의 풍경. / 사진=픽셀
옆 동네 오렌지카운티의 어바인은 학군과 계획된 주거 환경으로 잘 알려진 도시입니다. 이곳에서는 집이 조금 낡았더라도 가격 방어력이 높은 편입니다.
뉴욕 맨해튼 역시 비슷합니다. 오래된 협동조합 주택이나 콘도미니엄이라도 도심 핵심 입지에서는 높은 가격이 형성됩니다. 건물의 연식보다는 어퍼 이스트 사이드, 어퍼 웨스트 사이드 같은 지역과 주소 자체가 더 큰 가치를 갖죠.
마무리
한국에서는 입지가 좋더라도 집의 상태와 상품성이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같은 지역이라도 신축과 구축의 가격 차이가 몇억 원 씩 크게 벌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반면 미국에서는 입지의 영향력이 훨씬 직접적으로 작용합니다. 집의 신축, 구축 여부는 비교적 중요하지 않죠. 위치가 좋으면 가격이 유지되고 상태는 이후에 바꿀 수 있는 요소로 받아들여집니다.
이 차이는 무엇이 더 좋고 나쁘다기보다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집을 바라보는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우리가 선택하고 있는 것은 '내가 살고 싶은 동네, 그 안에서의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사진: 픽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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