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백만장자의 시대
엘레이맘읽는 데 약 3분

제미나이로 구현한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는 백만장자의 이미지
서류상으로는 백만장자다. 집값은 10억을 훌쩍 넘었고, 부동산 포털에 찍힌 시세는 오늘도 우상향 중이다. 하지만 지갑은 비어있다. 대출 이자에 관리비, 재산세까지 내고 나면 실질임금은 물가상승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쓸 돈이 없다. 2020년대 중반을 살아가는 신흥 자산가들의 역설적 초상이다.
한국 가구 순자산 분포 (10억 원 이상 '백만장자' 비율)

숫자로 보는 부자, 현실은 빈곤
한국 순자산 10억 원 이상 가구는 전체 가구의 약 11%에 달한다. 한때 부의 상징이었던 '백만장자'라는 단어는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지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진짜 돈이 많은 부자는 이제 “억만장자” 아니면 관심도 못 받는다. 10억~20억대 자산가들은 예전 같으면 명백한 상위계층이었는데, 요즘은 "똘똘한 한채" 보유자들이 주를 이룬다.
이들은 사회적으로는 “부자”로 분류되지만, 실제 생활은 10년 전 월급쟁이보다 빠듯한 경우가 많다. 순자산 10억~20억 원 사이 '백만장자' 가구 중 오직 20% 미만만이 바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유동자산(금융자산)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80% 이상은 아파트와 퇴직연금(IRP, DC) 계좌에 자산이 묶여있다. 장부상으론 부자지만, 유동성이 없어 재정적 충격(금리 상승, 실직, 건강 문제)에 취약한 '가난한 백만장자'다.
비중 (%) 전년 대비 변화 비고

코로나가 만든 균열
팬데믹은 자산 가격과 실질소득 사이의 격차를 극단적으로 벌려놓았다. 2022년 세계 실질임금은 명목임금 상승이 물가상승을 따라가지 못해 마이너스 0.9%를 기록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2023년 근로자의 실질임금은 전년 대비 1.3% 감소했다.
월급은 제자리인데 집값만 치솟았다. 집을 사려면 모든 대출을 끌어모아야 했고, 운 좋게 타이밍을 맞춘 이들은 서류상 백만장자가 됐다. 하지만 실제 삶의 질은? 열심히 투자하고 갈아타기하여 꿈에 그리던 반포에 입성했지만 갈수록 퍽퍽해 지는 삶을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단지의 공용 목욕탕에서 샴푸와 린스를 가져가는 일이 잦아져 비치를 중단했다는 이야기는, 이런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 역시 주변에서 이런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다. 겉보기엔 고급 아파트에 고급 차인데, 실제로 해외여행은 5년째 못 갔고, 아이 학원비 때문에 카드 돌려막고, 부모님 용돈 드리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진짜 “가난한 백만장자”들이다.
이 현상은 앞으로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2025년 현재 정부의 강력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한국 집값은 다시 뛸 조짐을 보이고 있고, 미국도 금리 인하 기대감에 주택 가격이 반등 중이다. 임금은 여전히 물가를 못 따라가고 있다.
평균 변동금리 (%) 기준금리 (%) 비고

행복의 역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여전히 집 없는 사람들보다 행복하다고 느낀다. 주택가격 상승이 임금 상승을 크게 웃돌았지만 적어도 '내 집'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 당장 쓸 돈은 부족해도, 집이라는 자산을 보유했다는 안도감이 현금 부족의 불안을 상쇄하는 것이다. 실제 설문조사에서도 주택 소유자들은 비소유자보다 삶의 만족도가 높게 나오는데, 그 이유가 “언젠가 갚아야 할 빚”이 아니라 “내 집”이라는 사실 자체에서 오는 심리적 안전감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안전감은 너무나 쉽게 깨진다.
코로나 시기처럼 주담대 금리가 4~5%로 뛰고, 대출 이자가 월 200~300만 원씩 나가는 순간, 그 안전감은 공포로 뒤바뀐다. 일상 비용은 줄어드는 현금이나 신용카드로 감당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불균형은 재정 여력을 압박하고, 부채를 증가시키거나 필수 지출을 미루게 만든다.
만족도 (점수, 5점 만점) 전년 대비 변화 비고

전세계적 현상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주택 소유자의 73%가 집은 부자지만 현금은 가난하다고 느낀다. 캐나다 토론토의 가장 부유한 동네에서 집값이 백만 달러가 넘는데도 빈곤선 이하 소득으로 살아가는 노인이 수천 명에 달한다.
전세계적으로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양적완화와 저금리 정책이 자산 가격을 끌어올렸지만, 실물경제의 임금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자산을 보유한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의 격차는 커졌지만, 자산 보유자들 역시 실제 생활수준에서는 과거보다 나아지지 않은 모순적 상황이 펼쳐졌다.
탈출구는 있는가
주택 다운사이징, 담보대출, 임대 후 재투자 같은 이론적 해결책은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작은 집으로 옮기는 비용인 중개수수료, 양도세, 이사 비용만 수천만 원에 달하고, 인기 지역의 작은 집은 예상만큼 저렴하지도 않다. 무엇보다 정서적으로 집을 떠나기란 쉽지 않다.
결국 이 시대의 백만장자들은 딜레마에 갇혀 있다. 자산은 늘었지만 자유는 줄었고, 부자가 됐지만 가난해졌다. 그들은 장부상의 숫자와 실제 삶의 질 사이 어딘가에서, 오늘도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으며 살아간다.
어쩌면 이것이 인플레이션 시대가 만들어낸 가장 기묘한 풍경일지도 모른다. 백만장자가 된다는 것이 더 이상 꿈의 성취가 아니라, 그저 생존의 또 다른 형태가 되어버린 시대. 결국 이 시대의 딜레마는 “집을 사지 않으면 영원한 세입자, 사면 가난한 백만장자” 라는 어느 것을 골라도 편치않은 삶을 살아갈수 있다는 것이다.
댓글 9
빅토리아 · 2025년 12월 3일
돈이 많아도 각종세금에 . ㅠㅠ 돈들어갈떄가 많은데.. ㅠㅠ 백만장자.. 근데 현실도 봐야겠군요
아기새 · 2025년 12월 3일
집은 비싼데 . ㅠ 비싸게 주고집을 삿지만 남은 현금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인가요 . ㅠㅠㅠㅠㅠㅠ
청라룡 · 2025년 12월 8일
백만장자라는 타이틀이 참 꿈이긴 한데..현실적으로는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을수도 있겠군요..ㅎㅅ
말차우유 · 2025년 12월 9일
월급 받아서 대출금에 공과금에 각종 카드값 다 빠져나가서 남는 돈은 없더라도.. 내 명의 내 집이 있다는 게 진짜 큰 위안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무주택자는 불안불안합니다. ㅜ
스위티자몽 · 2025년 12월 9일
현금 많은 사람이 진짜 찐부자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죠. 가난한 백만장자는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 같아요.
호잇 · 2025년 12월 12일
집사고나서 대출갚아나가는 것의 노예..
오늘을살자 · 2025년 12월 12일
너무 와닿네요 그걸팔고 어디갈곳도 없어요 휴..
새우깡 · 2025년 12월 19일
확실히 돈은 많지만 다 묶여있으니 가난한 백만장자란 표현이 들어맞는 거 같네요
와사비 · 2025년 12월 20일
자산 보유자와 비보유자 간의 격차는 커졌지만 자산 보유자 역시 실제 생활 수준은 나아지지 않은게 진짜 펜데믹 이후 전세계적인 흐름인 거 같네요
함께 보면 좋은 글
6.27 대출규제- 10억 이하 불장과 大 재개발의 시대 도래
5분임장25. 06. 29.

용산 도시개조, 실행 단계로 돌입…‘4도심’시대 개막 신호탄
Mr.리퍼비시먼트25. 06. 23.

[정비사업 투자 기본지침서①] 대전환의 시대, '부동산=정비사업'인 이유
Mr.리퍼비시먼트25. 05. 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