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사우루스

간절한 기도로 체결한 계약

양콩읽는 데 약 4

"107동 602호 계약되게 해주세요~~

계약되게 해주세요"

4월 초...나는 아침에 남편이 안방 욕실에 샤워하러 들어가면,

주방으로 부리나케 달려가서 싱크대 선반에 물을 떠 올려놓고 기도했다.

3월 중순에 20평대 거주 중인 A씨가 와서 30평대를 사달라고 했다.

현재의 집 20평대에서 20년 가까이 거주했는데 남편이 큰 수술을 하게 되자,

아들이 평생 이 좁은 평수에서 살지 말고 돈을 보태드릴테니 큰 평형대로 옮기라 권하였단다.

30평대를 한번 보더니 계약하고 싶다며 금액 조정 해달라기에,

아직 살고 있는 집을 내놓지도 않았는데 계약할 수 있느냐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현재의 집을 아들한테 명의를 넘긴 후 전세로 뺄 계획이라고 했다.

당시 전세 매물이 귀할 때라 빼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금액 조정이 되어 계약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 후 전세 손님이 있어 집을 보겠다 했더니, A씨가 말했다.

"중개사님 그냥 우리집 팔아주세요.

남편이 팔고 이사가재요."

"헉 그럼 그 집이 안 팔려도 매매 잔금 맞출 수 있나요?"

"아니요? 이 집 팔고 그 집도 대출 70% 풀로 받아야 해요."

거기서 나의 불행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사고 팔고 하는 경우 담보대출이 50% 밖에 안 나오는데...

더구나 매매가를 시세보다 다소 높게 내놓았으니 눈앞이 캄캄했다.

다른 손님 같으면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하냐 알아서 하시라!" 하겠는데,

어려운 사정을 구구절절 들었던 상태라 차마 입이 안 떼졌다.

그 뒤로 약속이나 한 듯이 매수세가 뚝 끊겼다.

괴로웠다. 오죽하면 아침마다 싱크대 선반에 물을 떠놓고 손 모아 빌었을까.

신혼 초 어머님이 "아가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깨끗한 물을 떠 올려놓고 조상님께 기도해야 된다. 그래야 원하는 것이 다 소원성취 되는 것이여." 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팔자에 없는 아침기도가 일상이 된 지 1주일쯤 지난 4월 중순 어느 날.

그날은 아침에 눈을 뜨자 좀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이번 주는 여러 행사를 치르다 보면 다 지나고 다음 주면 말일을 향해 줄달음치겠구나....

잔금일은 5월 초..정말 끝장이구나.

출근도 하기 싫고 밥도 먹기 싫었다.

그냥 계약금을 내가 물어주고 신경 꺼버릴까....

누워서 꼼지락거리며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데 원거리 중개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한번도 거래를 안해본 곳인데 전세와 매매를 찾았다. 이때다 하고 그 집을 열심히 브리핑했더니 잠시 후 보러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했다.

오늘은 열일 제치고 열심히 브리핑 하리라!

60대 중반쯤 되는 남자분과 아들 내외가 중개사랑 함께 왔다.

그들은 지방에서 바로 올라온 일행들인데, 오늘 우리 아파트를 필두로 약 10개 정도 아파트의 매매와 전세를 보기로 잡아놨다고 했다.

중개사가 반갑게 인사하며

'이 동네를 잘 몰라서 동네좀 훑어보러 왔어요.'라고 했다.

그냥 지역 파악좀 할겸 겸사겸사 관광 목적이 크다는 뜻이었다.

아들 내외 역시 집을 둘러보려고도 않고, 다음 약속인 역세권 아파트 전세 보러나 빨리 가자는 투였다.

나는 매수 당사자인 '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가며 열심히 브리핑했다.

되든 안되든 최선을 다해보자!

열심히 설명하니 나가려던 아버지가 나를 한번 쳐다 보더니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서 한번 더 둘러보았다.

집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아들이,

'다음 번째로 볼 집이 전세인데 깨끗하고 위치도 좋다'고 했다.

그들의 마음은 벌써 그 전셋집에 도착해 있었다.

역시 틀렸구나 하고 포기지심이 나오려던 찰라 '아버지'가 나를 빤히 보더니

"중개사님은 성이 뭐요. 열심히 하시네"

라고 물었다. 아버지를 모시고 가려던 아들이 멈췄다. 뭘 그런걸 묻나... 그쪽 중개사도 의아한 표정.

"양OO입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반색하며 말했다.

"아이고 느그 엄마랑 종씨네. 우리 이 집으로 계약하자."

아들이 놀라서 소리쳤다.

"아버지 무슨 소리 하세요!

주르륵 약속 잡아놓은 집들이 있다니까요. 무슨 집을 한 개 보고 계약해요.

더구나 엄마가 매매는 하지 말라셨잖아요."

"아니 이 중개사님이 이 집이 아주 좋대잖아.

그리고 엄마랑 성씨도 같고. 나는 이 집으로 할란다. 계약하고 가자"

아들이랑 중개사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데, 아버지는 아랑곳않고 앞장서 걸어나갔다.

그리고 진짜로 계약했다. 후에 중개사가 전화하여 박장대소했다.

"중개사님 그집 꼭 파셔야했죠?

간절함이 덕지덕지 묻어놔서 제가 일부러 빠져 있었어요."

그 말에 나도 웃음이 터졌다.

게다가 대출 문제로 양도와 양수 사이 2주가 필요했는데,

매도인이 지방으로 먼저 이사 내려가 입주하고,

2주 후 잔금과 등기 이전을 하기로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밥을 먹고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명제대로 계약이 체결된 것인지,

아니면 드디어 집이 빠질 때가 되었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매도인이 평소 쌓은 복덕이 결실을 맺은 것인지,

혹은 매수인과 그 집의 궁합이 철썩 맞은 것인지,

뭐가 정답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냥,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기로 했다.

댓글 18

  • 빅토리아 · 2025년 10월 15일

    원하는 집계약하느것도 마음처럼 안될떄가 있을거 같아요 ~~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 아기새 · 2025년 10월 15일

    계약하는데 있어서도 .. 뭔가 타이밍이 정말 중요한거 같아요 ..!! 다시한번 느끼게 되네요

  • 토끼풀 · 2025년 10월 15일

    간절하게 바라면 이루어진다

  • 눈사라밍 · 2025년 10월 16일

    내집이 되려면 되더라구요 뭔가 그런 타이밍도 중요한 것 같아요

  • 봄호랑이 · 2025년 10월 16일

    와 물 떠놓고 기도까지 하셨다니 정말 간절하셨군요.. 드디어 팔려서 정말 다행입니다!

  • 박하맛 · 2025년 10월 16일

    하.. 진짜ㅠ 현실스럽네요ㅠㅠ

    할수 있던게 물떠놓고 기도라니 ㅠㅠ

    그래도 좋은결말에 남의 일인데도 안심이 되네요

  • 말차우유 · 2025년 10월 17일

    얼마나 간절했으면 매도인이 물 떠놓고 아침 기도를 했을까요. 그래도 좋은 매수인을 만나 다행이네요.

  • 베테랑킴 · 2025년 10월 17일

    간절함이 닿았나봅니다. 내 집은 타이밍에 맞춰 나오는거 같아요 ㅎㅎ

  • 스위티자몽 · 2025년 10월 18일

    매수인의 입장에서는 집을 팔면서 새집도 구해야 하니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죠. 다행히 잘 해결되었다니 기도를 통한 바람이 이루어졌다고 봐도 되겠어요.

  • 현맘이 · 2025년 10월 18일

    얼마나 간절했으면..이렇게까지 했을까여ㅠㅠ 정말... 이게 운이..따라야하나..싶기도하네여..

  • 미니멀부자 · 2025년 10월 19일

    이런거 보면 진짜 내 집에 되려면 그런 시기랑 .. 그런게 다 있다는거 맞는거 같아요

  • 호잇 · 2025년 10월 21일

    진짜 굿타이밍..! 간전하게 바라면 이루어 진다는게 신기하네요

  • 아아정복 · 2025년 10월 30일

    확실히 간절하면 이루어지는것같아요

  • 와사비 · 2025년 11월 1일

    이런거 보면 참 신기하네요 딱 같은 성씨의 사람을 만나서 거래에 성공하고

  • 새우깡 · 2025년 11월 1일

    열정적인 브리핑이라는 노력이 더해져서 가능한 거겠지만 이런 행운이 있어서 삶이 특별한 거 같아요

  • 청라룡 · 2025년 11월 3일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참 좋네요..!!!ㅎㅎ 저도 더 간절히 열심히 살아야겠어요🥹

  • 뽀뽄 · 2025년 11월 12일

    중개사님의 진심이 통한 감동적인 사연이네요! '성씨' 인연 덕분이라니, 드라마 같아요.

  • 베키 · 2025년 11월 12일

    부동산 거래 현장의 예측 불가능한 변수와 인간적인 관계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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