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사우루스

그럼 그냥 계약하지 마세요!

양콩읽는 데 약 4

지난 주 한 손님이 급매물을 사서 전세를 놓고 싶다며 찾아왔다.

가격 조정까지 도와드렸 건만, '값이 떨어지면 어떡하죠?' '전세가 잘 맞춰질까요?' 쉴 새 없이 전전긍긍했다.

"그럼 그냥 하지 마세요~"

나는 예나 지금이나 투자를 적극 권하는 중개사는 아니다.

10년 전, 부산에 사는 60대 여성 B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파트 급매를 사서 월세를 놓고 싶다고 했다. 마침 저렴한 매물이 있어 소개했더니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계약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매매 계약한 집은 임차인 전출 일자가 3달 후라 그 시기에 맞춰 월세를 놓기로 한 것인데, 계약 다음 날부터 B씨가 매일 전화를 해댔다.

"월세 보러 온 사람 있나요? 안 나가면 어떡하죠? 이러다 공실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럴 때마다 '걱정마라 아직 시간이 있다'고 안심시켜도 온 세상의 근심 걱정을 다 끌어안은 듯한 B씨는 혼자 죽어갔다. 당시에는 전월세 매물이 귀할 때라 중개사 입장에서 세 맞추는 것에 대해 아예 걱정을 안 했는데도 불구하고, 월세 안 맞춰지면 잔금이 부족하다고 한 걱정을 하길래 '만약 그런 일 생기면 잔금은 제가 맞춰 드릴테니 염려 놓으세요!' 까지 했다.

한번 뭔가에 꽂히면 아무리 이해를 시켜도 거기서 못 헤어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B씨가 그랬다. 안심시키면 그 때뿐 날이 갈수록 죽어가는 목소리가 되더니, 일주일째 되는 날은 온 동네 중개사무소에 물건을 뿌렸다. 기간이 길다 보니 다른 중개사무소에서도 별로 신경을 안 썼던지, 열흘째 되는 날 전화해서 '혹시 세가 날짜에 맞게 맞춰지지 않으면 잔금을 꼭 대납해준다고 약속해달라'고 했다.

나를 못 믿어서 온 동네방네 물건을 흩뿌린 사람을 어찌 믿고 대납을 약속하겠는가

"그건 아니죠! 월세 놓는 걸 저한테 전속으로 의뢰하시면 혹시 날짜가 안 맞춰졌을 때 우선 대납을 해드리고 월세 잔금 때 회수하면 되지만, 온 동네에 물건을 다 뿌려놓으셔서 어디서 계약할지 모르는 상황에 어떻게 대납하나요?"

매매 계약 시 딱 한번 얼굴을 봤을 뿐인 B씨는 나의 거절이 밤잠을 설치게 했는지 다음날 다시 전화가 왔다.

"너무 걱정돼서 도저히 잠을 못 자겠어요. 그냥 본전치기라도 팔아주세요!"

하....너무나 시달리던 터라 정 그러신다면 팔아드린다 하고 당시 매입가보다 2000만원을 더 올려 매수인을 붙였다. 워낙 급매물이다 보니 금액을 올려도 바로 손님이 붙은 것이다. 물론 정식으로 등기 치고 양도세 내고 넘기는 조건으로 진행한다고 설명했더니 B씨는 너무 고마워하면서 3일 후로 계약 시간을 잡았다.

그런데 또 다음날, 취득세 내고 양도세 내면 남는 게 얼마 안 되니 그냥 등기 안 치고 넘기게 해달라고 했다.

"저는 불법 중개, 미등기 전매는 안 합니다. 그리고 어떤 매도인이 자기집을 2000만원이나 더 받고 파는 매수인을 위해서 계약서를 다시 써주겠나요? 그냥 원칙대로 진행하셔야 합니다"

라고 했더니, 그 다음 말이 가관이었다.

"그러면 제가 남는 게 별로 없으니 중개보수를 받지 마세요!"

계약한 지 보름 동안 혼자 죽네사네 하다 본전치기라도 넘겨 달랄 때는 언제고, 순이익이 천여만원밖에 안 되니 중개보수를 받지 말라고?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안됩니다!!"

3시간 후 다시 전화가 왔다.

"내가 여기저기 알아보니 OO시 부동산협회 간부라면서요? 부동산은 원래 찔리는 것도 많다는데 어디 얼마나 잘 하고 있나 내가 신고좀 해볼까요? 세금신고는 제대로 하시나? 높으신 분이 그러다가 망신 당하면 어쩌시려고~ 그러니 수수료 받지 마세요~"

헐~~~~

중개업을 장기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의뢰인들은 수 틀리면 중개사를 잿밥 삼으려 한다는 것. 단순 변심이거나 혹은 중개사가 사소한 실수라도 하게 되면 그걸로 협박 아닌 협박을 일삼는 게 다반사다.

언젠가는 세입자가 만기 전에 이사를 나간다 하여 새로운 세입자를 맞췄는데, 잔금 날이 2달 후로 잡혔다. 그런데 기존 세입자가 갑자기 잔금을 한달 정도 앞당겨달라는 요구를 했다. 당시 나는 독감에 걸려 링거를 맞고 누워있는 상황이었더터라 중개보조원이 이사 올 사람한테 전달을 했더니 알아보고 연락주겠다고 했단다. 그러나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들이닥쳐서 삿대질을 하며 난리를 쳤다.

요지는 중개사가 감히 날짜 당기는 것을 빨리빨리 연락 안 해주고 시간을 끈다 그런 식으로 일하면서 중개보수는 왜 받아먹냐...

하이라이트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생긴 것도 이상하게 생겨놓고 일도 이상하게 하네? 그렇게 생겨먹었으니 일을 제대로 하겠어?"

헐.....너무 황당해서 화도 안 났다. (그 손님은 중개사보다 5살쯤 많은 여성분이었다). 그리고 이사나가는 날에 '이사 날짜 조정을 빨리 안해줘서 중개보수를 다 줄 수 없다'며 우수리(?)25,000원을 빼고 주었다. 그냥 웃으면서 받았다.

아무튼 중개업을 하다보면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협박이고 뭐고 연연하지 않는다. 그냥 법대로 원칙대로만 중개하면 그만이지 뭐. 그래서 B씨에게도 단호히 선언했다.

"그러세요~ 여기저기 신고하시고 월세를 놓든 되팔든 다른 부동산 통해서 하세요.

저는 오늘부로 이 물건에 대해서는 관심을 끄도록 하겠습니다. "

했더니 바로 잘못했다고 수수료 다 줄테니 계약 진행해달라고 했다. 안 내켰지만 마음 다잡은 뒤 계약 진행해주고 중개보수도 받았다. 고맙다며 손을 잡고 고개를 조아리는 B씨에게 나는 기어코 말했다.

"앞으로 부동산이고 주식이고 절대 투자하지 마세요. 계약 다음 날부터 그리 안달복달 하실 거면 앞으로 집값이 오르거나 내릴 때마다 병원 실려가시겠네요. 투자 하실 성격 못되니 그냥 돈 생기면 장독대에 묻어두세요. 돈 버는 것보다 정신 건강이 더 중요하잖아요~"

그리고 나는 그분을 잊었는데 그분은 나를 못 잊었었나 보다. 1년 후 갑자기 전화를 걸어왔다.

"그때 중개사님 말대로 그 집 샀어야 했어요. 이제 중개사님 하라는대로 할게요. 다시 집 사주세요!"

당연히 거절했다.

중개업을 오래 하면서 느끼는 건, 돈이 돈을 부른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의 품성도 돈을 부른다.

저 사람 참 좋은 사람이네 복 받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사람들은 그후 어디선가 만나도 역시 잘 살고 있더라.

꼭 좋은 물건에 투자를 해야만 돈을 버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좋은 마음, 여유 있고 배려하는 마음,

그 모든 것이 좋은 기운으로 돌아와 돈도 벌게 해주고 잘 살게 만들어준다.

결국 좋은 투자의 요건은 복합적이며 '사람됨'으로 완성된다.

🌸관련 콘텐츠도 읽어보세요

댓글 22

  • 쿠우올라 · 2025년 6월 4일

    진짜 뼈 때리는 말이네요. 좋은 사람됨이 결국 좋은 투자로 이어진다라 ^^

  • 조미니 · 2025년 6월 4일

    이런 중개사님 만나면 진짜 복인 거죠 원칙 지키는 분들이 오래갑니다

  • 풀잎메뚜기 · 2025년 6월 4일

    중개사들도 말 바꾸는 경우 많다

    진짜 사람 by 사람 케바케

  • 범내려온다 · 2025년 6월 4일

    가만보면 결국 투자도 성향 싸움임

  • 연시은 · 2025년 6월 4일

    읽는 내내 손에 땀남ㅠㅠ 근데 중개사님 말 넘 뼈 때림 ‘장독대에 묻으세요’ㅋㅋㅋㅋ

  • 승훈맘 · 2025년 6월 4일

    저런 사람들은 그냥 투자하면 안 되는 거 인정합니다!

  • 우린깐부 · 2025년 6월 4일

    별~~~미친사람 다보네요^^ㅋㅋㅋ돈이 돈을 부른다 이말 맞는듯요~ㅎㅎㅎ양콩님 같은 중개사가 많아야하는데~진짜 투자할 깜냥 안되면 장독대에 묻으세요~~^^ㅋㅋㅋ

  • 샤인머스캣 · 2025년 6월 4일

    보는 내내 제가 괜히 다 승질이 났어요😆 제 성격이 급하고 질러버리는 성격이라 그런지 몰라도 저렇게 안달복달 하면 스트레스 많이 받을 것 같아요😅

  • 행복하자꼭 · 2025년 6월 4일

    누가 보면 중개업이 무슨 서비스업 끝판왕인 줄 고객 응대도 한계가 있죠 원칙 없이 끌려다니면 진짜 다 무너져요

  • 평지조아 · 2025년 6월 4일

    글을 보는 제가 다 열받네요...역시 중개사무 일은 어렵습니다~!

  • 집좀사자 · 2025년 6월 5일

    저 정도면 정신검진을 받아봐야 하는 것 아닌지 글을 읽으며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세상엔 쉬운 일이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 웃으면된다고생각해 · 2025년 6월 6일

    진짜 읽는동안 미쳐버리는줄알앗네 고구마18203개 먹은줄암ㅋㅋㅋㅋ뭐저딴사람이 다있누 아 읽는내가 다 승질이 나네 미친것

  • 호우호우 · 2025년 8월 9일

    진짜 사람이 중요한거 같아요 그래서 사람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 눈사라밍 · 2025년 8월 14일

    중개로 인한 피해도 적잖이 있는 것 같은데 좋은사람 만나는것도 복인것같아요

  • 미니멀부자 · 2025년 8월 19일

    맞아요 이런일은 진짜.. 사람 잘 만나야하는것도 중요한 부분이죠

  • 헤일리 · 2025년 9월 3일

    저렇게 딱 끊어내는 게 낫습니다 저런 사람들은..

  • 새우깡 · 2025년 9월 8일

    진절머리 나는 사람이네요

  • 와사비 · 2025년 9월 9일

    큰 돈이라 이해가 어느정도 가긴하는데 정도가 너무 심하긴하네요

  • 호잇 · 2025년 10월 6일

    ㅋㅋㅋ장독대에 묻으라니 저런사람들은 투자 안하는게 나을듯요

  • 팽오리 · 2025년 10월 8일

    진짜 중개사도 잘 만나야된다고 생각합니다

  • 말차우유 · 2025년 11월 8일

    안 팔릴까 봐 전전긍긍하더니만 막상 팔리니까 세금 때문에 등기 안 치고 넘기게 해달라는 건 뭔가요. 중개 보수까지 안 주려고 하는 건 진짜 너무하네요.

  • 스위티자몽 · 2025년 11월 9일

    부동산 협회 간부면 찔릴 게 더 많은 건가요?? 무슨 말도 안 되는 협박까지해서 중개수수료 안 주려고 하다니 진짜 진상 같아요.

함께 보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