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사우루스

500원이 더 갔어요!

양콩읽는 데 약 3

"500원이 더 갔어요. 실수로 500원이 더 들어갔어요."

오전 9시 45분..매수인은 은행과 10분째 대화하고 있다.

아침 9시에 매매잔금을 했다. 통상 오전 11시 전후로 잔금 시간을 잡기 마련인데 매도인이 얼른 마치고 출근해야 해서 9시로 잡았다. 눈을 비비며 8시 58분에 도착하니 사무실 문 앞에 매수인이 앉아 있었다.

반갑게 웃었지만 우린 조금 불편한 사이다.

3년 전에 전세 계약을 해서 입주했다. 2년 후에 재계약서를 써줬다. 그때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2개월 전 임대인이 집을 팔겠다고 했다.

세입자가 매수하겠다 하면 1000만원 정도 싸게 넘기겠다고 한번 의사를 물어봐달라고 했다.

세입자는 바로 사겠다고 했다. 그렇게 일은 시작되었다.

순순히 사겠다 하더니 그날 밤부터 많으면 하루에 세 번, 적으면 한 번 전화가 걸려왔다. 심지어 취업 준비생 아들이 전화를 한 적도 있다.

"왜 우리 엄마한테 집을 사라고 하셔서,, 부부싸움이 났어요!"

휴대폰을 통해 격앙된 남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안 사도 되니 싸우지 마시라고 했다. 휴...

3일 후 다시 세입자가 전화를 걸어오더니 집을 사겠다고 했다.

계약 시간을 일주일 후 오전 9시로 잡았는데 첫날은 전화해서 대출 관계를 물었고 둘째날은 등기비를 물었고 셋째날은 중개보수를 물었다. 한 가지 물을 때 한번만 전화한 게 아니라 최소 세 번은 했다.

후회가 시작되었다. 나는  왜 세입자에게 집을 사겠느냐고 물어봤을까...당시 바쁜 기간이었는데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대출 관련은 은행 상담사로 연결해 넘겼는데 은행 상담사가 sos를 쳤다.

"대표님 저 그 아줌마 때문에 미치겠어요. 별거 아닌 걸로도 수시로 전화를 해대서 업무를 볼 수가 없어요."

이해한다. 나도 그러니깐... 아무튼 등기비는 최저로 뽑게 도와줬고 중개보수도 깎아주었다. 슬슬 한계치에 도달해도 꾸욱 눌러 참고 있는데 계약 하루 전날 전화를 했다.

"거래 신고 건수를 보니 우리 집보다 싸게 팔린 집도 많네요. 왜 우리한테 이렇게 비싸게 중개하는 거에요!"

무조건 1000만원을 깎으라고 소리 소리 질렀다. 한계점에 도달한 나는 더 이상 못 깍으니 그냥 집 사지 말라고 했다. 전화기 너머로 아들이 "엄마 제발! 제발!" 애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아들이 전화기를 낚아채더니 죄송하다고 했다. 나는 일주일동안 수십통이 넘게 전화받으면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그러니 그냥 내일 계약은 취소시키겠다고 했다.

그리고 집주인한테  전화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계약 깼습니다." 라고 했더니 잘했다고 웃었다.

계약을 깨고 나니 세상 편했다

"내 손으로 계약을 깨고 이렇게 즐겁다니 이제  은퇴할 때가 되었군."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딱 1주일이 지나자  세입자가 전화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일주일동안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이 집을 사야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다시 오전 9시로 계약시간을 잡았다. 계약하는 날 세입자는 A4 용지 두 장에 연필로 빽빽히 써온 자료를  보며 물었다.

장기수선 충당금은 언제 주시나요?

대출금은 어떻게 나오나요?

선수관리비도 있다는데요?

나는 이 분이 점점 안쓰러워졌다. 집주인이 말했다.

"그런 건 여기 중개사님이 다 똑부러지게 설명해주시니 믿고 기다리세요."

세입자가 내 눈치를 보더니 말했다.

"처음에 계약 잡혔을 때 수수료 깎아주신다고 했는데 여전히 깎아주시나요?"

내가 그렇다고 말하자 집주인이 말했다.

"그동안 많이 힘들게 하셨으니 부동산비는 깎으면 안되는 거예요. 더 많이 주셔야 복 받으시는 거예요."

집주인은 계약 마치고 가면서 "중개사님이 일찍 나오시느라 식사 못했을 것 같아서 샌드위치좀 사왔다"고 건네주었다.

그리고 잔금날.

모든 잔금을 다 끝내고 집주인도 돌아갔는데 이분은 전세자금 대출금 상환액을 송금하더니

'500원이 더 갔다'고  통화 중이다. 은행은 정말 통화 연결되기도 쉽지 않은데 어렵게 연결되서 500원 이야기를 하시다니 참 대단하신 분이다. 내가 1000원짜리 한 장을 줘버릴까 말까 손이 근질근질 한데

"아~ 맞게 들어왔다구요? 500원이 더 들어간게 아니라구요?"

하고 끊는다.

사람이 행복하고 불행한 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가끔은 스스로를 힘들고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본다.

그래서 또 배운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댓글 20

  • 말차우유 · 2025년 9월 3일

    세상에 별별 사람이 다 있다지만.. 참 이런 분도 있군요. 뻔뻔하다 못해 질리는 스타일이네요. 중개 완료하신 거 대단하십니다..ㅜ

  • 스위티자몽 · 2025년 9월 3일

    오죽하면 아들이 전화로 죄송하다는 말을 했을까요.. ㅜ 집주인이랑 중개사님한테 한 것처럼 가족들한테도 엄청 스트레스를 줬나 보네요.

  • 호우호우 · 2025년 9월 3일

    에이고..이런 사람들이 있나보네요..참..별의별 사람들이 있네요

  • 훠이 · 2025년 9월 3일

    와..저런 사람 한번 더 만낫다가는 머리가 어지러울거 같은 느낌

  • 와사비 · 2025년 9월 4일

    어휴 텍스트만 봤는데도 질리는 사람이네요

  • 오늘을살자 · 2025년 9월 4일

    진짜 괜히 사라해서 힘드셨겠어요 이래서 함부로 권하면안된다는건지 ㅜㅜㅜ 진짜 고생하셨습니다

  • 호라이즌 · 2025년 9월 4일

    ㅎㅎㅎ 끝까지 쪼잔(?)하시네요...

  • 베테랑킴 · 2025년 9월 4일

    와 진짜.. 그냥 글로만 읽는데도.. 제 혈압이 다 올라가네요 ;;;

  • 미니멀부자 · 2025년 9월 4일

    정말 별별사람 다 있네요. 괜히 안 받아도 될 스트레스까지 다 받으셨네요...

  • 새우깡 · 2025년 9월 5일

    사람을 대하면 대할수록 왜이렇지 싶은 사람들 많더라구요

  • 창조경제 · 2025년 9월 5일

    글을 읽고있는데 피로도가 몰려오네요. 정말 힘든 거래를 성사시키겼습니다. 그리고 거래 후에는 벗어나기를. 그런 분들은 거래후에도 책임론을 하기도 해서 걱정스럽습니다.

  • 호잇 · 2025년 9월 5일

    정말 ... 너무 고생많으셨어요 힘든...일이었네요

  • 김다솔이에요 · 2025년 9월 8일

    진짜 마지막까지쪼잔하다라고말을하능게맞는거게쬬?

  • 팽오리 · 2025년 9월 10일

    헐 ㅋㅋㅋ이런경우도있네요

  • 눈사라밍 · 2025년 9월 10일

    세상에 별별사람 많다는건 알고있는데 참...이것도 오랫만에 어이없는글이네요 ㅎ

  • 치킨 · 2025년 9월 28일

    세상에는 뭐 많은 종류의 사람이 있고 다들 생각하기를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게 아닐까요..ㅋㅋ

  • 펜트하우스 · 2025년 10월 25일

    부동산 거래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네요 정말 피곤한 상대이네요

  • 청라룡 · 2025년 11월 5일

    와...글만 읽어도 뇌가 울리는데요...귀에서 피 안나셨어요?ㅠㅠ

  • 포근포근쿠키 · 2025년 11월 15일

    와 이런 경우가 있기도 하네요.. 참 피곤합니다, 피곤해요.

  • 말차우유 · 2025년 11월 15일

    저도 글 읽으면 읽을수록 너무 어이가 없더라고요. 막판에 또 500원은 뭔지.. 결국엔 제대로 송금된 거였는데 왜 그 난리를.. 너무 피곤하게 사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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