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경매 취하될 거예요!
양콩읽는 데 약 3분

웬 남성이 음료수 박스를 들고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111동 5층 경매 물건, 낙찰 받으면 얼마에 팔 수 있을까요?"
나는 음료수 박스를 돌려주며 말했다.
"그 집 경매 취하될 거예요!"
그리고 3차 매각 기일 딱 하루 전에 경매가 취하되었다.

경매 물건이 나오면 2~3주 전부터 매매 시세를 묻는 전화와 방문이 빗발친다. 시세 파악 후 경매 입찰가를 결정하고 최고가 매수인이 되어 낙찰을 받으면, 다시 중개사무소에 의뢰해 단기 차익을 남기고 처분하려는 계획이다.
평소에는 경매 물건이 나와도 그러려니 했던 나는 111동 5층 경매 물건에 대해서는 돌발 행동을 했다. 등기사항증명서를 열람해보았더니, 11년 전에 매수하여 입주한 50대 Y씨가 수개월 전 사망하여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상속이 된 상태였다.
주목할만한 점은 보통 경매 물건은 채무 금액이 매매 시세를 초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아예 매도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태인 경우가 많은데 비해, 이 집은 근저당권 채권최고액이 매매 시세의 40%에 불과했다. 그것도 11년 전 아파트 매입 시 설정한 담보물권 딱 1건.
부동산이 경매로 넘어가는 이유는 주로 채무 불이행, 즉 ‘돈을 제때 못 갚아서’ 생기는 문제이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택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았지만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은행 대출 이자를 3개월 이상 연체 시, ‘기한이익 상실’ 상태가 된다. 즉, 원래는 매달 갚으면 되던 대출을 한꺼번에 전액 갚으라는 상황으로 바뀌는 것이다.
경매라는 것은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사건이 아니고 또한 거주하던 아파트가 경매 넘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적인 어려움이 극에 달했다는 의미라 대개의 소유자들은 외부와의 단절을 시도한다.
또한 경매 개시 결정이 떨어지면, 더 이상 집을 내맘대로 어쩌지(처분) 못하고 경매 절차를 따라야 한다고 포기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간혹,,, '경매 넘기느니 차라리 매도 의뢰를 했으면 채무 변제도 쉽게 하고 오히려 건지는 돈이 더 많았을 것을...' 하고 아쉬운 때가 많다. 경매는 매매 시세와 차이가 많이 나는 최하한가 선에서 낙찰되는 경우가 많아서 소유자 입장에서는 무조건 손해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채무 정도가 집값을 초과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Y씨처럼 집 시세 40% 미만의 채무라면 당연히 시세보다 낮게 급매로 처분하더라도 훨씬 이익이다.
어떤 사정으로 극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에, Y씨 집으로 방문하여 벨을 눌렀지만 예상대로 반응이 없었다. 결국 사무실로 돌아와 쪽지를 써서 들고 가 현관문에 붙였다..
"oo중개사무소입니다. 시간 나실 때 전화좀 부탁드립니다."
연락은 없었고, 이미 2번 유찰된 후라 그런지 기일이 가까워질수록 전화와 방문이 늘었다.
3일 후 아침, 출근하자마자 웬 남성이 들어왔다. 그 역시 111동 5층 경매 물건을 낙찰받으면 얼마 정도에 매각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3차 매각 기일 전에 소유자들과 연락이 되면, 채무금액을 대신 변제해주고라도 경매 취하를 시도해볼 생각입니다.
시세보다 조금만 낮춰 팔면 경매 낙찰가보다 훨씬 많은 돈을 건질 수 있는데도, 최근 상속이 이루어진 것을 보면 소유자들이 경황이 없어 방치되고 있는 것 같아서요."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명함을 하나 챙겨들고 나갔다. 그리고 10분 후에 다시 방문하여, 본인이 어떻게든 소유자들과 대화를 시도하여 경매가 보다는 높은 금액으로 매도를 협의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3일 후 Y씨 가족과 연락이 되어 함께 방문하였다.
지병을 앓고 있던 Y씨 배우자는 남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아 삶의 의욕을 상실하여 자녀들과 함께 극단적 선택까지 고민하던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한다.
부동산 거래 경험은 커녕 경매라는 절차조차 너무 생소하여 쫓겨나갈 날만을 기다리던 차였는데, 내가 붙여놓은 메모지는 못 보았고 남성이 붙여놓은 메모지에 'oo중개사무소 통해 연락했다'는 문구를 보고 11년 전 계약을 진행해주었던 중개사인줄 알고 전화했다고 한다.
협의를 통한 후 바로 채권자인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방문하여 채무를 변제하고 경매 취하신청을 하였다. 결국 3차 매각기일을 하루 앞두고 경매가 취하된 것이다.(아파트 물건의 경우에는 보통 3차 매각기일에 최고가 매수인이 결정된다.)
경매 취하는 경매 진행 단계에 따라 가능 여부가 달라진다.
1. 낙찰 전 취하
- 낙찰자가 결정되기 전에는 채권자의 의사 만으로 언제든지 경매를 취하할 수 있다. 채무자가 채무를 변제하거나 채권자가 다른 방법으로 채권을 회수하기로 결정한 경우 낙찰 전 취하를 고려할 수 있다.
2. 낙찰 후 취하
- 낙찰자가 결정된 후에는 최고가 매수 신고인(낙찰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경매를 취하할 수 있다.
경매 취하 신청에 소요된 비용을 계약금으로 하여 매매계약서를 작성한 후, Y씨 가족이 집을 구할 수 있도록 3개월의 여유를 주기로 했다.

계약이 끝난 후 Y씨 배우자가 울먹이며 말했다.
하루 하루 생을 마칠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덕분에 다시 뭔가 희망이 생기는 듯하다며, 이제부터라도 힘을 내어보겠다고 했다.
나 역시도 앞날이 창창한 자녀들을 생각해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하라고 부탁하였으며, 남편의 그림자가 남아있는 이 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라고 조언하였다.
경매는 최악의 상황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채무 정도에 따라 얼마든지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 그럴 때 경험 많은 주변 공인중개사를 찾아가 상담해 볼 것을 권한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좋은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다.

댓글 25
임천 · 2025년 6월 24일
좋은일 하셨습니다 그분들에게 은인이네요
뉴글 감평사 · 2025년 6월 24일
매수인 매도인 중개인 모두에게 좋은 상황이네요.....
미스터차차 · 2025년 6월 24일
가족분들 무사히 새 출발 하셨기를.. 앞으로는 좋은 일들만 가득하셨으면 좋겠어요!
바로미터 · 2025년 6월 24일
경매로 집 잃는 분들 꽤 많은데 이렇게 잘 풀어가는 경우는 처음 봤어요 앞으로 이런 사례 많이 공유 부탁해요~~
평화주의자 · 2025년 6월 24일
마음이 짠하다 경매는 숫자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또 한번 느끼네요
파죽지세 · 2025년 6월 24일
저도 한때 비슷한 일이 있었죠 ㅎㅎ 물론 어릴때지만요ㅎ 최선을 찾아주신 것 같애요
팔로우미 · 2025년 6월 24일
전문가 자문 받는게 중요합니다 무작정 가족들 의지하다간 서로가 구렁텅이로 빠지고 더 힘들어집니다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전문가들 찾아다니셔야 해요
습관의힘 · 2025년 6월 24일
참 이런 글 보면 안타까워요ㅜ 집은 그냥 자산이 아니라 가족의 추억이고 삶의 터전이라는 말이 다시금 떠오르네요ㅜㅜㅜ
마포경찰관 · 2025년 6월 24일
지금도 경매 직전 물건 찾는 분들 많은데 사실상 낙찰보다 채권자랑 직접 딜하는게 비용도 시간도 더 적게 들수도 있는것같애요! 실무 중개사! 꼭 활용!!
부릉이 · 2025년 6월 24일
경매 어려운것 ㅜㅜ 제가 만약 저 상황이라 생각하면 참 막막할듯요 ㅜ
양콩 · 2025년 6월 24일
오~ 감사합니다.
바로 지난주에 해결한 사건인데
처음엔 중개사가 너무 오지랍 부리는 거 아닌가 싶어서
외면하려 했다가
밤잠이 안 올 정도로 안타까워
두번이나 찾아가 벨도 누르고
쪽지도 붙이는 등 돌발행동을 한 것인데,
결국 매각 기일 하루 전에 극적으로 해결됐네요.
사실 경매 물건은 일부러 모른척 하거든요. 해당 소유자가 자존심 상해할까봐...
글로는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비관적이고 참담한 생활을 이어가던
가족들이, 죽다 살아난듯 좋아하며 울먹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글로 옮긴 이유는
위에 주신 댓글들처럼 혹시 경매 개시 결정이 떨어져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결 방법을 찾아보시는 것도 좋겠다는 의미입니다.
해피테크 · 2025년 6월 25일
멋지십니다👍
지구뿌 · 2025년 6월 26일
안그래도 급매로 파는게 더 이득일텐데 왜 경매로 넘어갈때까지 버티나했더니 이럴수도 있겠네요
눈사라밍 · 2025년 7월 16일
진짜..속상해요 이런글들보면..
베테랑킴 · 2025년 7월 23일
참.. 애매하네요.. 경매로 넘어갈때까지 버티는거가....
와사비 · 2025년 8월 1일
경매로 넘어가는 이유가 그런 사정들이 있어서 였군요
새우깡 · 2025년 8월 5일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호우호우 · 2025년 8월 11일
참 방법이..이런경우가 있는지 글을 보고 알게 되었네요
미니멀부자 · 2025년 8월 25일
그러게요.. 이런글은 참.. 이런 경우도 있구나.. 속상할거 같습니다...
호라이즌 · 2025년 9월 4일
글 잘봤습니다 생각이 많아지네요 무튼 해결되어 다행입니다
호잇 · 2025년 9월 7일
좋은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위티자몽 · 2025년 10월 10일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군요. 그래도 해결이 잘 되어서 너무너무 다행입니다. 중개사님, 정말 대단하세요!
말차우유 · 2025년 10월 10일
매각 기일 하루 전에 극적으로 해결됐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중개사님이 한 가족을 살리셨네요.
오늘을살자 · 2025년 10월 12일
좋은분이시네요 자신일처럼 생각하고 안타깝게여겨 좋은길을 터주셨네요
창조경제 · 2025년 10월 12일
와. 존경스럽습니다. 어떻게 손쓸 수 없어서 손놓고 있던곳에 희망을 심어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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