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집을 선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콩읽는 데 약 3분

"매매좀 보러 왔는데 언제 들어오시나요?"
점심 약속이 있어 막 식당에 앉았는데 전화가 왔다.
밥 먹고 가면 30분 정도 걸린다 했더니 올 때까지 기다리겠단다.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30대 여자 손님이 따라 들어왔다.
입주 날짜가 언제쯤이냐고 물었더니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날짜가 정해지지 않았다면 그냥 임장만 하러 온 건가부다 생각하고 큰 기대 없이 물건을 보러 갔다.
첫번째 집에 들어가자마자 문득 편안한 표정을 짓더니, 수도꼭지마다 물을 틀어보았다. '어라~ 물까지 틀어보는 건 나름 마음 결정을 했다는 건데...?'
그녀는 다른 집은 보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 뭐 아직 살던 집도 안 나갔다니 구조만 대충 보면 되는 거였겠지'.
부동산 투자 스터디용으로 임장 활동을 다니는 젊은 세대들이 있다는 정보가 돌던 때라 그러려니 했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명함을 건네며 "잘 생각해보고 연락주세요!" 라는 상투적인 말로 굿바이 하려던 찰나, 그녀가 말했다.
"저 이 집 계약 할게요!"
딱 한 집 보고 바로? 그것도 달랑 혼자 보고?
손님이 집 한번 보고 바로 계약하겠다면 중개사 입장에서야 더할 나위 없는 일이지만 그 상황이 왠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이 동네를 잘 알아요?"
내 표정이 어땠을까 나도 궁금하다.
"가격대랑 위치가 맞아서 관심 갖고 있었어요. 계약할게요."
많은 물건 중 딱 한 개만 보고 계약하겠다고?
더구나 아무리 싼 금액이라도 누구나 한번쯤 금액 조정을 부탁하는데 그런 이야기도 없이?
마주치자 수줍은 미소를 짓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계약을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 집 다른 손님들 안 보여주고 하루 기다릴게요. 그러니깐 주변도 둘러보고 집에 가서 신중히 의논해보고 내일 연락해요"
나는 그때 알았다. 내가 좀 4차원 중개사구나. 손님이 계약하겠다면 얼씨구나 하고 바로 계약서부터 쓸 것이지 신중히 의논해보고 내일 연락하라니...
그런데 그녀도 4차원 손님이었다. 나에게 바짝 다가오며 말했다.
"아니에요. 지금 바로 계약할 수 있어요!"
바로 매도인한테 전화를 했다. 도배비랑 이사비용 정도 빼주면 계약하겠단다고 전달했고 매도인은 동의했다. 단시간 만에 계약이 체결되었다.
간식 먹듯이 계약을 한 지 보름쯤 지났을 때 이젠 매수인이 된 그녀가 어머니와 함께 인테리어 견적을 뽑겠다고 방문했다. 매도인이 미리 이사 나간 상태라 비밀번호를 받아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어머니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거실의 싱크대를 보더니 탄성을 질렀다.
"와아~ 내가 좋아하는 무늬다!"
뭔가 연극 무대에서나 볼 수 있는 신파조의 감동어린 목소리. 창밖을 향해 있던 내 시선이 반사적으로 그녀에게 꽂혔다.
"이거 내가 좋아하는 무늬에요. OO아!(딸) 엄마꺼 분홍색 블라우스 이거랑 똑같은 무늬 있잖아. 와~ 이건 정말 운명이다. 너무 감동이야"

뭐야..... 이런 노후되고 올드한 디자인을 보고 감동?
이 집 싱크대 상판은 한쪽에 금이 가 있어서 계약 시에 미리 고지하고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도 파손 상태를 기재했었다. 어머니가 무늬만 보고 상판 상태를 못 봤구나 싶어서
"여기 금이 갔어요. 싱크대 교체하셔야 해요."

"괜찮아요. OO아 무늬라고 생각하자! 엄마가 좋아하는 무늬의 싱크대가 설치된 집을 만나는 게 어디 쉽겠니?"
어머니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헐~이게 무슨 상황이야?
"중개사님 이 집을 소개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감동이에요.
저 오래되고 냄새나는 빌라 지하에서만 살았어요. 아파트로 이사 올 수 있다니 너무 꿈만 같아요."
헉...둔기에 가슴을 찔리는 느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여기 더 있다간 안되겠네...
"먼저 사무실로 가 있을게요~"
나는 어머니의 눈물범벅을 외면하고 서둘러 돌아나왔다.
20분 후에 세상을 다 얻은 표정인 어머니와 딸이 함빡 웃음을 지으며 사무실로 왔다. 결연한 표정의 어머니가 내 앞에 딱 서더니 말했다.
"중개사님! 이렇게 좋은 집을 저에게 선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뭔가 종교적인...
"제가 선사해드린 게 아닙니다. 저는 단지 중개를 한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좋아하실 거면서 왜 집 보러 올 때는 같이 안 오셨어요?"
"제가 병원에 있어요. 아파트를 샀다고 해서 집을 너무 보고 싶어서 의사샘 몰래 잠깐 나왔어요. 회진 시간 되기 전에 얼른 들어가야 해요"
병석의 어머니가 퇴원할 때 모시려고 30대 딸이 생애최초 디딤돌 대출을 받아서 마련한 아파트란다.
그제서야 밥 먹으러 간 시간에 30분 넘게 기다리다가 딱 한 집만 보고 계약하던 그날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하루만 생각해보고 오라 해도 바로 계약하겠다고 서두르던 모습이 다 이유가 있었구나.
그녀에게는 어떤 집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평생을 빌라 반지하에서만 살다 아파트에 살아보는 게 꿈인 엄마에게 드릴 퇴원 선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드디어 입주하던 날,
어머니가 시루떡 접시를 들고 들어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선전포고 하듯 말했다.
"중개사님! 중개사님은 아니라고 하시는데
저는 중개사님한테 이 좋은 집을 선사 받은 게 맞다고 생각해요! 중개사님 덕분에 싱크대 무늬가 제 블라우스 무늬랑 똑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어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말을 서둘러 마친 어머니는, 혹시 또 내가 "선사한 게 아니고 단지 중개를 한 거"라고 우길까봐 휙 돌아서 나갔다.
20여 년간 중개업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이런 손님은 또 처음이다. 처음엔 다소 황당스럽던 마음이 5분 10분 지나면서 스멀스멀 즐거워졌다.
'맞아. 공인중개사가 좋은 집을 선사해주는 담당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사실 좋은 집을 소개해주려는 마음은 늘 갖고 있잖아. 또 그 집에 들어가 사는 사람들이 모두 건강하고 잘됐으면 하는 마음도 항상 가지고 있고.....
이게 우리 마음인데, 남의 마음이나 진심을 다 알아주는 세상이 아니다 보니 나조차도 잊고 있었네...
그래 나는 좋은 집을 찾아서 선사해주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맞아.'
행복은 각자의 마음 속에 있다.
그러니 행복의 기준도 당연히 각자의 인생살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군가가 정해놓은 잣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고 기뻐할 줄 아는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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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2
용가리 · 2025년 4월 16일
글 읽다가 순간 울컥했습니다.ㅠ
양콩님 필력은 "역시~" 입니다.
클래스는 영원하다.
우린깐부 · 2025년 4월 16일
어머~~~~~~너무 감동적이에요~~ㅠㅠ읽는데 눈물이 찔끔 날뻔했네요^^; 효녀인데다가 말도 예쁘게 하는게 어머님이 너무 좋으시겠어요^^*어머님 꼭!!!건강하세요~~~!!
집좀사자 · 2025년 4월 16일
모든 것에 감사하기가 쉽지 않은데, 대단하네요. 저렇게 착한 사람만 사는 세상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날개를 펼치고 훨훨 날아오르시길.
나안아... · 2025년 4월 17일
헉!!!요새 세상 팍팍하다 느꼈는데,,이런 분들 덕분에 그래도 세상의 온기를 조금은 느낄수 있지 않을까!!! 생각들어요!!! 따뜻한 글에 따뜻한 마음을 가지신 분 덕분에 제 마음도 덩달아 따뜻해집니당ㅎㅎㅎ꼭 행복하세요ㅎㅎㅎ
빅피쳐 · 2025년 4월 19일
좋은 공인중개사 만나는 것도 다 복입니다
키득 · 2025년 4월 21일
저였으면 바로 계약 하고 이게 웬 떡이냐 했을 텐데... 한 수 배우고 갑니다
양콩 · 2025년 4월 21일
아오...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록만장 · 2025년 4월 23일
오늘 올라온 글 읽어보고 재밌어서 전 글도 보러 왔어요
실제 이야기를 풀어주니까 집중도 잘되고 좋네요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올려주실지 기대가 됩니다
가나다람쥐 · 2025년 4월 23일
원하는 집을 딱 보여 주는 것도 능력이죠 저 분 양콩님 만난 것 자체가 복이네요 😆
아기새 · 2025년 8월 18일
좋은 집 찾는것도 쉽지가 않은일인거 같아요 ㅠㅠㅠㅠㅠ 따뜻해 지는글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
아기새 · 2025년 9월 25일
집을 한번만 보고 계약하기도 너무 힘들거 같ㅇ은데 대단하네요 .. 진짜 저렇게 착한 사람이 있다니
김다솔이에요 · 2025년 10월 12일
뭘 하든간에 좋은집을 찾기가제일 어려운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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