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사우루스

양치질 하다 건진 계약

양콩읽는 데 약 4

점심을 먹고 평소처럼 양치를 하던 중이었다.

치카치카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실루엣이 황급히 시야를 스쳐 지나갔다. 한 달 전, 아파트를 매도했던 사모님이었다.

잔금을 치르고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하기까지 꼭 한 달이 남은 시점. 그런데 뭔가 서두르는듯한 그 발걸음이 양치질 하던 내 손을 멈추게 했다. 동시에 한 달 전 계약 당시 유난히 서두르던 그녀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조급함.

물론 서류상 계약은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됐지만, 중개를 오래 하다 보면 이성보다 감각이 먼저 알아채는 잔상이 남을 때가 있다.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컴퓨터 책상으로 향했다. 거품이 가득한 칫솔을 입에 문 채로 인터넷 대법원 등기소 창을 열었다. 화면이 넘어가고, 해당 지번의 등기부를 열람한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가압류

새빨간 경고등 같은 글자가 시야에 박혔다.

등기 원인일은 일주일 전, 등기부에 실제로 기재된 날은 바로 어제였다.

입에 물고 있던 칫솔을 싱크대쪽으로 집어던지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뛰어 버스 정류장에 도달했을 때, 막 도착한 버스에 올라타려던 그녀가 보였다.

다짜고짜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의아해하는 그녀를 이끌고 숨 가쁘게 사무실로 돌아와 모니터 화면을 가리켰다.

"사모님, 이게 뭐예요? 알고 계셨죠?"

그녀는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시선을 흐리며 얼버무렸다.

"아... 그게.. 친구한테 돈을 좀 빌렸는데..."

그 한마디에 직감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서둘러 집을 매도한 정황. 가압류가 들어올 것을 알면서도 막지 못한 상황을 종합해 볼 때 그녀의 재정 상태는 이미 극도의 위기에 몰려 있었다. 그렇다면 조만간 또 다른 제한물권들이 도미노처럼 밀려 들어올 것이 뻔했다.

"또 들어올 거 있죠?"

"없어요, 정말 없어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지만, 이미 내 귀에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수많은 거래를 진행하며 체득한 것 중 하나는, 위기의 순간에는 사람의 말보다 그 사람을 감싸고 있는 분위기가 훨씬 더 진실하다는 사실이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거짓말을 하는 매도인이 아니었다.

이 집 계약을 체결하고 은행 대출 승인까지 받아둔 채 이사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매수인.

아무 잘못도 없는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는 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했다.

곧바로 매수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간략히 설명한 뒤, 소유권 이전에 필요한 서류를 일러주며 지금 당장 중개사무소로 와달라고 요청했다. 동시에 협력 법무사에게 연락해 등기 이전에 필요한 서류를 지참해 방문해달라는 긴급 타전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매도인을 내 차에 태워 주민센터로 향했다. 매도용 인감증명서를 비롯한 필요 서류들을 번개처럼 발급받아 다시 사무실로 복귀했다.

필요 인원들이 모이고 모든 서류가 테이블 위에 정렬되자마자, 곧바로 소유권 이전 등기 절차를 밟았다.

아직 잔금 날짜가 남았기 때문에, 남은 대금은 원래 약정한 날짜에 지급한다는 확인서를 별도로 꼼꼼히 작성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평소 나의 철칙은 '무리한 계약 진행은 절대 하지 않는다'이다.

하지만 그날 나는 무리한 진행을 서슴치 않았다. 본능이 부채질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이렇게 해야 한다고.

몇 달 뒤, 예상대로 사무실로 소장 한 통이 날아왔다.

'사해행위 취소 소송 예고장'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할 의도로 재산을 은닉하거나 처분했을 때, 채권자가 그 법률행위를 취소하고 재산을 채무자 명의로 원상회복시키기 위해 제기하는 소송이다.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매도인에게는 이미 감당하지 못할 다른 채무들이 얽혀 있었고, 추가로 들어오려던 압류와 권리관계들이 우리가 한발 앞서 소유권을 이전하는 바람에 차단되어 버린 것이다. 채권자 입장에서는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소송을 걸어올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다행스럽게도, 매수인은 매도인의 경제적 사정을 전혀 몰랐던 선의의 제3자였다. 계약 과정은 통상적인 시세에 맞춘 정상 거래였고, 대금 지급 역시 투명하게 이루어졌다. 나는 매수인을 대신해 거래의 정당성과 사실 관계를 적극적으로 소명했고, 모든 일은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가끔 사람들은 중개사가 하는 일이 단순 노동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부동산 거래 시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중개사는, 등기부 한 줄의 행간, 고객의 말투 하나, 눈빛의 흔들림, 사무실에 감도는 미묘한 공기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일한다.

계약서라는 하얀 종이 위에는 차마 인쇄되지 못하는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 만약 내가 양치를 하며 창밖을 내다보지 않았다면,

사모님의 급한 뒷모습을 무심히 지나쳤다면,

'설마 별일 있겠어' 하며 등기부를 떼어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내가 계약이 완전히 끝나는 순간까지, 아니 그 이후까지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많은 사건 사고와 각양각색의 사람 여행을 거치며 체화된 중개사로서의 생존감각 덕분에,

나는 오늘도 안전한 거래를 준비한다.

댓글 6

  • 키득 · 2026년 5월 21일

    매번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 양콩 · 2026년 5월 21일

    감사합니다^^

  • 도레미 · 2026년 5월 27일

    정말 안전거래가 중요하더라구요 ㅠㅠ 이제 끝인거지?라고 방심하면 안되는거같아요 아무래도 큰 돈이 들어가니깐요 ~

  • 도로롱 · 2026년 5월 29일

    와 정말 식겁하셨겠네요... 새삼 큰 돈 걸린 거래인데 안전한 거래를 해야한다는 말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 팽오리 · 2026년 6월 8일

    맞아요 진짜 계약이 끝나는순간까지 끝이 아닌것같음..

  • 공간의가치 · 2026년 6월 8일

    계약서엔 아무 문제 없어도 뭔가 찜찜한 느낌이 남을 때가 있잖아요

    그 감각을 무시하지 않고 끝까지 챙겼다는 게 진짜 프로다운 것 같아서 인상 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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