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집 앞에는 왜 상가·편의점이 없을까
Easy 부동산 in the USA읽는 데 약 3분

처음 미국에 여행 왔을 때, 친구의 집을 방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참 수다를 떨다가 시계를 보니 밤 10시. 저는 친구에게 "좀 출출하지 않아? 편의점 가서 간식 좀 사 오자!"라고 말했죠.
그러자 친구는 "편의점? 집 주변에 그런 거 없어. 그리고 지금 걸어 나가는 건 좀 위험해."라며 웃었습니다.
이처럼 미국에서 살다 보면 한국과 비교했을 때 사소하지만 묘하게 낯선 장면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밤에 간단한 간식을 사기 위해 도보로 방문 가능한 집 근처 편의점을 찾는다는 것은 미국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죠.

한국에서는 아주 익숙한 풍경입니다. 골목마다 편의점이 있고, 조금만 걸어가면 카페와 식당이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는 작은 상가가 있고, 주택가 사이사이에도 슈퍼마켓·분식집·미용실·세탁소 등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런 풍경을 쉽게 보기 어렵습니다. 주택가가 시작되면 몇 블록을 걸어도 상가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드물게 여러 상점이 모여 있는 플라자가 가까이에 있는 주택가도 있지만, 이는 예외적인 경우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의 대부분 도시에서는 한국처럼 집 앞 상가나 골목 상권을 찾기 어려운 걸까요?

처음부터 분리돼 설계된 도시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문화 차이라기보다 도시 설계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미국 대부분의 도시는 조닝(구획화, Zoning)이라는 토지 이용 규제를 기반으로 형성됐습니다. 조닝은 토지를 용도별로 구분해 사용하는 제도입니다.
대표적으로
- 주거 지역(Residential)
- 상업 지역(Commercial)
- 산업 지역(Industrial)
으로 나뉘며, 주거 지역으로 지정된 곳에서는 상업시설 입지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제도는 1916년 뉴욕의 Zoning Resolution에서 처음 체계적으로 도입됐는데요. 당시에는 공장과 상업시설이 주거 환경을 침해하는 문제를 막기 위해 용도 구분이 필요했습니다. 이후 이러한 방식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오늘날의 도시 구조가 자리 잡게 됐죠.
이에 따라 미국 도시에서는 주택가 내부에 상가가 자연스럽게 섞이는 구조 자체가 상대적으로 적게 형성됐습니다.

미국 동네 상권, 아예 없는 건 아냐
다만 "미국에 동네 상권이 없다"는 표현은 완전히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미국에도 동네 상권은 존재합니다. 다만 한국처럼 주거지 내부에 촘촘하게 분포한 형태가 드물고 주택가 내부보다는 특정 상업 구역에 모여 있는 구조가 일반적이죠.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상권 형태는
- Neighborhood retail center(동네형 상업시설)
- Strip mall(주차장이 붙은 일렬형 상가)
- Small shopping plaza(생활형 쇼핑센터)
등입니다.
또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처럼 오래된 도시에서는 주거와 상업이 결합한 Mixed-use 건물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LA 내에서도 보이는 극명한 차이
이러한 차이는 한 도시 안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의 사례를 한 번 볼게요. 카운티 내 여러 지역 중 한인타운은 LA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미국에서도 비교적 상업시설과 주거시설이 밀집된 지역입니다. 아파트와 식당·카페·상점 등이 한 블록 안에 함께 있어 비교적 도보 이동이 가능한 상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LA 카운티 교외 주거 지역은 전혀 다른 풍경입니다. 넓은 주택 단지가 이어지고, 상가는 보통 차로 몇 분 이상 이동해야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차로 5~10분 이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생활 방식입니다.

미국 상권은 '도로 중심'으로 형성된다
한국에서는 집과 상가가 혼합된 도시 구조를 보이지만, 미국은 자동차 중심 도시 구조를 기반으로 형성됐습니다. 그 결과 상권 역시 큰 도로를 따라 형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 대형 도로 옆 쇼핑센터
- 넓은 주차장을 갖춘 상가
- Strip mall
과 같은 형태가 익숙한 풍경입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자동차 보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도시가 수평적으로 확장됐고, 상업시설 역시 자동차 접근성을 중심으로 설계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 상업시설에서는 넓은 주차장, 도로 접근성, 드라이브 스루와 같은 특징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보행 중심 지역, 집값 프리미엄 붙는다?
이러한 도시 구조는 단순한 생활 방식뿐 아니라 주택 가격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미국에서는 걸어서 생활이 가능한 지역을 'Walkable neighborhood'라고 부르는데, 이런 지역은 부동산 시장에서 프리미엄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 도시 연구기관 Smart Growth America가 발표한 'Foot Traffic Ahead(보행 흐름 전망) 2023' 보고서에 따르면, 보행 중심 지역은 미국 주요 대도시권 전체 면적의 약 1.2%에 불과하지만 약 19%의 GDP가 집중될 정도로 경제 활동이 밀집된 공간입니다.
해당 구조는 수요는 높지만 공급은 제한적인 시장을 만들고, 자연스럽게 부동산 가격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같은 기관이 발표한 2019년 보고서는 보행 친화적인 지역에 대해 투자자와 거주자가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경향, 즉 '가격 프리미엄'이 있음을 명확히 설명했습니다.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프리미엄은 유지되고 있으며, 일부 시장에서는 주거·상업·오피스 자산에서 30~40% 이상의 가격 차이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마무리
각 나라 도시 풍경의 차이는 도시 설계와 부동산 구조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도시는 단순히 건물이 모여 있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한 도시를 이해하려면 관광지뿐 아니라, 주택가의 거리와 상권 구조까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도시를 여행할 계획이라면, 곳곳을 걸으며 도시 설계와 생활 방식을 직접 관찰해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입니다.
(사진: 픽셀)
댓글 1
팽오리 · 2026년 6월 15일
미국의 부동산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한국이랑 너무 달라서 생소할떄가 많은 것 같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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