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도 대신 증여…다주택자의 마지막 선택
호랑이읽는 데 약 3분

<이재명 대통령. 청와대 홈페이지>
설날 가족들은 한자리에 모여 한 해 동안 있었던 일을 나누고 새해 계획을 이야기한다. 자녀의 진로와 부모의 건강, 노후 준비 같은 대화가 오가다가 자연스럽게 빠지지 않는 주제가 있다. 바로 ‘집’ 이야기다.
“이 집은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지금 넘기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말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올해 설날에는 그 무게가 한층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통계가 이런 분위기가 단순한 체감이 아니라 현실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울의 아파트와 빌라 등 집합건물 증여 건수는 8491건으로 전년보다 약 30% 늘었다. 이는 2022년 이후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올해 들어서도 증가세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서울의 집합건물 증여 건수는 785건으로, 전년 같은 달의 두 배에 달했다. 이런 흐름이 유지된다면 올해 증여 건수는 2022년 이후 처음으로 1만 건을 넘어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설날에 오갔 “차라리 증여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말이 통계로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증여가 늘어나는 가장 큰 배경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에 있다. 정부는 오는 5월 9일을 기점으로 유예 조치를 끝내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그동안 다주택자는 주택을 매도하더라도 기본세율인 6~45%만 적용받았지만, 유예가 종료되면 다시 중과 체계로 돌아간다. 중과가 재개되면 2주택자는 기본세율에 20%포인트가 더해지고, 3주택자 이상은 30%포인트가 가산된다. 여기에 지방소득세(양도세의 10%)까지 포함하면 3주택 이상 보유자의 최고 세율은 82.5%에 이른다.
예를 들어 3주택자가 주택을 매도해 10억 원의 양도차익을 얻었다면 이 가운데 8억 원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 할 수 있다. 더구나 중과 대상이 되면 장기보유특별공제도 적용되지 않는다. 보유 기간이 아무리 길어도 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장치가 사실상 사라지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다주택자들 사이에서는 “팔아서 세금을 내느니, 넘기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 확산되고 있다.
물론 증여 역시 세금이 없는 선택은 아니다. 자녀에게 주택을 증여할 경우 증여세율은 10~50%의 누진 구조를 따른다. 성인 자녀에게 10억 원 상당의 주택을 증여하면, 공제를 적용하더라도 수억 원의 증여세를 부담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여가 늘어나는 것은, 양도로 발생하는 세금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양도소득세와 지방소득세에 더해 향후 보유에 따른 종합부동산세 부담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다주택자 입장에서는 증여를 통해 보유 구조를 바꾸는 것이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일 수 있다. 특히 집값 상승을 기대하는 경우에는 지금 증여하고, 나중에 자녀가 매도하도록 하는 방식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할 여지도 생긴다.
증여가 특정 지역에서 두드러진 점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 증여가 가장 활발했던 곳은 서초구로 1908건에 달했고, 이는 전년보다 약 80% 늘어난 수치다. 송파구 역시 654건에서 1208건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집값이 높고 양도세 부담이 큰 지역에서 증여가 집중됐다는 점은, 단순한 절세 목적을 넘어 집주인들이 여전히 해당 지역의 미래 가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팔아서 현금화하기보다 가족에게 넘겨 장기 보유를 선택했다는 것은, 자산 가격에 대한 기대 심리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신호다.
이 같은 증여 증가는 시장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매도를 통한 거래보다 증여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시장에 나오는 매물은 줄어든다. 현재 서울 주택 시장은 급매물 위주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매도자들은 가격을 쉽게 낮추지 않고 매수자들은 관망하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여기에 양도세 중과가 다시 적용되면 다주택자들의 매도 유인은 더욱 약해질 수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재 나와 있는 급매물이 소진된 이후 매물 잠김 현상이 본격화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거래량은 줄어들고 가격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 구조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금리 인하 기대와 맞물려 바닥론이 퍼지고 있다. 학군지와 교통 호재 지역을 중심으로 실수요가 움직이고, 여기에 제한적인 투자 수요가 더해지는 흐름도 관찰된다. 증여 증가는 이런 기대 심리가 실제 행동으로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팔지 않고 넘긴다는 선택은 해당 자산의 향후 가치에 대한 긍정적 판단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이야기는 이제 가벼운 화제가 아니다. “지금 증여할까”, “팔아야 할까”, “더 버틸까”라는 질문은 한 가정의 선택을 넘어 시장의 흐름을 바꾸는 요인이 되고 있다. 증여 증가는 개인의 절세 전략이지만, 그 결과는 매물 감소와 유동성 축소, 가격 경직성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부동산 정책 역시 이런 흐름을 반영해 다주택자에 대해서는 보유와 처분을 압박하는 기조를 유지하는 한편, 지방과 실수요 중심 시장에는 완화책을 병행하고 있다. 전국을 하나의 잣대로 규제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보유 형태와 지역에 따라 차등 관리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셈이다.
부동산 시장은 언제나 정책과 심리가 맞물려 움직인다. 지금의 증여 증가는 다주택자 규제 강화라는 정책 변화와 다시 살아나는 가격 기대감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다. 설날에 오갔던 집 이야기가 유난히 진지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증여 통계의 증가는 시장 방향이 다시 한 번 갈림길에 서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읽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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