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사우루스

중개사가 거부한 재계약서

양콩읽는 데 약 3

평화롭다 못해 한가로운 오후 3시에 걸려온 전화가 나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디리리링

수화기 너머에는 30대 청년의 목소리가 있었다.

아파트 뒤편 빌라에 살고 있는데 전세 만기가 되어 은행 제출용으로 재계약서를 써줄 수 있느냐는 문의였다.

빌라 전세 재계약서?

빌라 물건을 잘 다루지 않지만, 만약 내가 계약했던 집이라면 어느 정도는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더구나 계약자들 폰 번호는 입력해두는 편이라 벨소리와 함께 인적 사항이 떠야 하는데 정보가 없었다.

"몇 동 몇 호세요?"

"102동 301호요. 전세대출 연장을 해야 해서 재계약서를 빨리 써야 해요."

102동 301호라니. 순간 기억이 스쳤다.

노모를 모시고 사는 50대 아들이 전세로 살다 매수했던 집. 3년 전쯤, 팔아달라 해서 어렵게 손님을 붙였더니 돌연 안 판다고 거둬버렸던 기억.

뭐야..안 판다더니 전세를 놓았나?

그런데 왜 나한테는 말이 없으셨을까. 처음 이사 올 때부터 상의하던 분인데…

내가 집을 빨리 안 팔아드려 서운하셨던 걸까.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맴돌았다.

"아, 그분들이 전세 놓고 이사가셨군요."

"아니에요. 그분은 집을 팔았고, 새로 산 사람들이 전세를 놓은 거예요."

빌라를 사서 바로 전세를 놓았다고?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럼 그때 전세 계약해준 중개사무소에 재계약을 요청하세요.

저희는 직접 중개하지 않은 물건의 대서계약은 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자 청년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 중개사무소가 없어졌어요. 중개보수 드릴 테니 부탁드려요. 전세대출 연장이 시급해요."

중개사무소가 없어죠? 최근 2년 간 이 근처에서 폐업한 중개사는 없는데.

"실례지만, 전세보증금이 얼마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1억 8000만 원이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빌라는 2000년식 투룸. 매매가가 1억 4000~5000만 원대다. 그런데 전세가가 1억 8000만 원이라니.

"죄송하지만, 저는 이 동네에서 20년째 중개업을 하고 있는데 그 빌라 매매 시세가 1억 5000만 원을 넘은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전세가가 1억 8000만 원이라니요? OO빌라 맞습니까?"

"네, 맞아요."

"그럼 재계약하시면 안 됩니다. 집주인에게 최소 8000만 원은 반환 받으셔야 합니다."

청년은 잠시 침묵했다. 생각보다 놀라지 않는 듯했다.

"이런 말씀 실례일 수 있지만, 그 집에서 나오시는 게 좋습니다."

청년은 다소 절망적인 목소리로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매매가 보다 높은 전세라니....가슴이 두근거렸다.

10분 후, 또 다른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조금 전에 빌라 전세건으로 전화 한통 받으셨죠? 제가 그 빌라 집주인입니다.

전세대출 연장하려면 재계약서가 필요한데, 써달라는 계약서는 안 써주고 세입자한테 이사나오라 마라 하면 어떡합니까?"

명령조의 강한 어투였다.

"재계약서가 없으면 세입자는 나가야 하고, 저는 보증금을 반환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요. 제발 좀 써주세요. 중개보수 두배로 드릴께요."

생면부지의 임대인. 얼굴을 알아도 써줄 수 없는데,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전세를 놓고서 전화 한통으로 압력(?)을 넣다니.

아무리 중개보수를 많이 준다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그리고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다.

"18000만 원 전세금으로는 써드릴 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전세금을 10000만원 선으로 낮춰주신다면 세입자를 위해서 고려해보겠습니다."

집주인은 2년 전, 어느 사이트에서 이 물건을 보고 계약했다고 했다.

시세보다 저렴하다는 설명과 근처에 곧 역이 들어설 예정이라 조만간 폭등할 거라는 말에 혹했다고 한다. 더구나 매매와 동시에 같은 금액으로 전세를 맞출 수 있어 자기 자본 없이 매입 가능하다는 말에 선뜻 계약했다는 것이다.

말 안 해도 안다. 당시 자칭 기획부동산들이 빌라를 무자본 갭투자하는 방식으로 매매와 동시에 전세를 맞추는 거래가 성행했다. 빌라 매매가 쉽게 안 이루어지다 보니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업계약을 하여 전세금을 맞춘 뒤 차액을 나누어 사라지는 수법이다. 그런데 그런 경우 보통 바지임대인을 내세우기도 하는데 이 집주인은 그들과 한패(?)가 아니라 또 하나의 피해자인 듯 했다. 더구나 임차인은 아는 동생이라고 했다.

그는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다시 한번 재계약서 작성을 부탁했다.

“저는 못 써드립니다. 죄송하지만 다른 중개사를 알아보세요.”

대화는 끝났지만, 그는 한동안 전화를 끊지 않았다. 막막한 심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계약서를 써주는 건 도움도, 해법도 아니다.

시세 확인도 없이 사이트에 올라온 매물을 덥석 계약한 건 너무 무모했다. 그 피해는 결국 임차인에게까지 고스란히 이어졌다.

왜 아직도 부동산 계약을 단순하게, 쉽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까.

아무리 좋은 물건 같아 보여도, 아무리 공인중개사 신뢰가 바닥을 친다 해도,

직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매물을 거래할 땐 최소한 해당 지역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중개사 두세 곳에 시세 확인은 해봐야 한다. 또한 실거래가 사이트에서 실제 거래 내역을 확인하는 절차는 반드시 거쳐야 한다.

결국 공인중개사를 통한 계약만큼 안전한 계약은 없다.

사람을 믿어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지만, 동시에 사람을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되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 모순 앞에서 오늘도 중개사의 마음은 무겁다.

댓글 26

  • 방방곡곡 · 2025년 9월 24일

    직거래는 조심해야겠네요. 큰 돈이 들어가는 만큼 돌다리도 두들겨 보는 지혜가 필요할 듯~

  • 빅토리아 · 2025년 9월 25일

    진짜 부동산계약이 한두푼도 아니고 .. 신중하게 해야 하는거는 맞는거 같아요 ㅠㅠㅠㅠ. 에혀

  • 아기새 · 2025년 9월 25일

    진짜 사람 믿을수가 없네요 ㅠㅠ. 저런 상황이 온다면 너무 난감할거 같아요 ㅠㅠㅠㅠ. 복잡하네요

  • 팽오리 · 2025년 9월 25일

    헉 직거래는 진짜 조심하긴 해야겠네요 아무리 요즘 말이 많다지만 그래도 중개사 통하는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 눈사라밍 · 2025년 9월 25일

    이래서 직거래가 무서운 것 같아요ㅠㅠ무조건 2-3곳은 비교해봐야겠어요

  • 창조경제 · 2025년 9월 25일

    와 이런분들이 정말 계시는군요 세입자나 집주인이나... 두분다 마음이 먹먹하시겠어요 둘다 이게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게 아닐듯요

  • 말차우유 · 2025년 9월 25일

    집주인이 사기치는 건가 싶었는데 집주인도 피해자 입장이었나 보네요. 요새 직거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던데.. 직거래하기 전에 진짜 꼼꼼히 알아보고 해야지, 안 그러면 큰일 나겠어요.

  • 스위티자몽 · 2025년 9월 25일

    괜히 부동산이 있고 중개사가 있는 게 아닐 텐데, 아무리 직거래가 시세보다 저렴해도 저렇게 막 계약하면 안 되죠. 저 집주인이 과연 이후에 재계약을 했을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 호잇 · 2025년 9월 26일

    ㅠㅠ마음이 아프지만 잘 알아보고 했었어야 했는데 안타깝네요 정말 ..

  • 오늘을살자 · 2025년 9월 26일

    이렇게 재계약서를 요구하게 된 두사람 모두 안타깝네요 좋게 해결하ㅎ셨음 좋겠네요 ㅠㅠ 어떻게 그렇게 거래를 하셨을꼬

  • 무슈 · 2025년 9월 26일

    진짜 처음 집살때 계약서는 꼼꼼히 봐야겠어요

  • 아아정복 · 2025년 9월 26일

    요즘에도 사기 치는사람들이 많은것같아요

  • 베키 · 2025년 9월 26일

    매매가보다 전세금이 높다니... 정말 아찔하네요. 시세 확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 펜트하우스 · 2025년 9월 26일

    부동산 직거래를 말로는 들어봤는데 실제로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네요 어떤 거래든 전문가와 거래를 하는게 제일 안전한 방법인것 같아요 요즘 전세사기나 이런 것들도 많던데 계약서나 등기부 잘 알아보고 계약해야겠어요

  • 베테랑킴 · 2025년 9월 26일

    진짜.. 쫓기듯이.. 제대로 알아보지못하고 진행했다가는 정말.. 뒷통수 맞는거죠..

    계약서 정말 잘 알아보고 진행해야하죠..

  • 미니멀부자 · 2025년 9월 26일

    다들 바보라서 중계사 끼고 계약하는게 아니죠. 그만큼 정말 중요하니까요.

  • 뽀뽄 · 2025년 10월 7일

    와, 이건 정말 위험한 거래네요. 중개사님 원칙 지키신 게 천만다행이에요! 부동산 거래는 진짜 꼼꼼하게 확인해야겠어요.

  • 베키 · 2025년 10월 10일

    헉, 빌라 전세 사기 위험한 상황이었네요! 중개사님의 직관과 원칙 덕분에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 와사비 · 2025년 10월 11일

    시세랑 실거래가 확인은 꼭 해야겠네요

  • 새우깡 · 2025년 10월 11일

    진짜 시세확인 필수에 신중신중하고 전문가를 통해 거래해야하는 게 맞는 거 같네요

  • 김다솔이에요 · 2025년 10월 13일

    휴 실거래랑 시세랄 다르다니 꼼꼼히확인해야겠네요

  • 청라룡 · 2025년 10월 22일

    중개사라는 직업이 괜히 있는게 아닐테니까요...!! 전문적인 곳을 거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어요!

  • 박하맛 · 2025년 10월 26일

    이래서 직거래를 하더라도 꼭 부동산에 대필이라도 꼭꼭 해야하는거 같아요 불안해서 원.

  • 현맘이 · 2025년 10월 29일

    이래서 믿을사람 하나없다고ㅠ

  • 현맘이 · 2025년 11월 2일

    이래서 직거래는. .위험한거같아요.. 신중에 신중을가해야하는.. .

  • 포근포근쿠키 · 2025년 11월 13일

    진짜 큰 돈이 걸린 것에 대해서는 직거래, 아는 사람은 무조건 배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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