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장판 아니고 원목마루
양콩읽는 데 약 2분
여름 감기로 밤새 고생하다 겨우 잠든 새벽 6시경에 전화벨이 울리는가 싶더니 끊어졌다.
폰을 확인하니 8살 많은 친한 여성 공인중개사 번호였다.
다시 잠들었다가 아침이 되어 문득, 며칠 전에도 전화가 왔는데 못 받았던 기억이 났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전화했더니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받았다.
대상포진에 걸려 병원 입원 중이란다.

병문안을 가겠다고 했더니
"올 필요 없고 하소연좀 들어줘!"
라고 간청하듯 말했다.
한달 전에 매매계약을 했단다.
시세에 비해 저렴한 급매물이 나와 젊은 매수인 부부가 방문하여 두 번이나 보았는데,
바닥은 원목마루 시공으로 깨끗하고 벽면 도배 상태는 아이들 낙서 때문에 조금 지저분했다.
젊은 매수인 부부는 도배 상태를 트집 잡아 매매대금 절충을 요구했다. 그러나 매도인은 시세보다 저렴하게 내놓은 매물임을 이유로 더 이상의 절충을 거부했고, 결국 가까스로 협의되어 매매가에서 300만원을 감액하였다.
그리고 매매계약서 특약 사항란에
'도배,장판비조로 매매가를 절충하여 계약함' 이라고 표기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 날부터 오늘까지 주구장창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이유가 뭐냐고?
매수인이, 계약서 특약사항에 '장판'이라고 표기돼서 바닥이 장판인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원목 마루여서 그걸 다시 뜯어내고 장판으로 교체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고
원목마루 걷어내는 비용으로 200만원을 더 깎아달라고 떼를 쓴단다.
아침저녁으로 전화해서, 중개사가 중개를 잘못했노라고 후라이팬에 콩 볶듯이 달달 볶았다.

환갑을 훌쩍 지나고 경력도 많지 않은 이 중개사는 시달리다 시달리다 병이 났다는 것이다.
심지어 200만원을 더 안 깎아주면 구청에다 민원을 넣어서 중개를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까지 한단다.
심약한 중개사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피로로 대상포진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는데, 입원 중에도 이 지독한 전화를 수시로 받고 있다고 했다. 웬만하면 200만원 자기가 물어주고 끝낼까 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걸 묻고 싶어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일단 원목마루 상태를 물었다.
지저분하거나 훼손된 곳 없이 아주 멀쩡하고 깨끗하단다.
매수인이 집을 안 보았느냐고 물었다.
두 번이나 꼼꼼하게 보았다고 한다.
나는 '그러면 됐다!' 고 말했다.

어느 벽면 후미진 곳 균열 누수, 파손 등등은 짐으로 가려져 있거나 일일이 들춰볼 수 없어서 못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거실 바닥을 못 보았다는 건 말이 안된다. 거실 바닥 어딘가가 훼손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여부가 아니라 거실 바닥 그 전체의 재질을 못 보았다는 건 핑계일 뿐이다.
설령 어느 후미진 곳을 확인 못했어도 그건 중개사만의 책임이 아니고 언제나 매수인 책임도 함께 있다.
우리 법은 중개사 뿐 아니라 계약 당사자도 중개대상물을 스스로 확인하고 주의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대개의 사안에서 과실 책임 비율을 일정하게 나누는 판결이 이루어진다.
게다가 '도배,장판비 조로 300만원을 절충'하였으면 그것이 단순히 장판만을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다.
바닥재 전반을 의미하는 포괄적 표현으로 해석함이 타당하고, 실제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란 12번에도 "벽면-바닥면 및 도배 상태" 란이 있고 그 상태를 깨끗 / 보통 / 수리 필요로 체크하는 난은 있지만, 바닥재가 장판인지 원목인지의 종류를 확인설명 하는 곳은 별도로 없다.
만약 원목마루가 훼손이 심한 상태라 불가피하게 걷어내야 한다 해도
도배 장판비조로 매매대금을 절충해준 것에 포함되는 거지,
어찌 원목 바닥 걷어내는 비용을 별도로 요구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원목마루가 훼손된 것도 아니고
당사자들이 두 차례나 방문해 확인했으며
도배 장판비 조로 300만 원을 감액한 계약서까지 작성했는데,
이후에 제시한 원목 철거 비용 200만 원은 매도인이나 중개사가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다.
나는 말했다.
“우리는 매매계약서를 쓴 거지, 인테리어 견적서를 뽑아준 게 아니지 않습니까?
입원 중이라 더 이상 통화는 어려우니 민원이든 소송이든 알아서 하라고 단호히 자르세요!"
밤낮으로 시달리다 병이 나 누운 병실에서도
민원에 시달려야 하는 어느 중개사의 현실이,
무더위 만큼이나 심신을 지치게 한다.

댓글 19
창조경제 · 2025년 7월 23일
와 진짜 이런걸로도 이렇게 트집을 잡네요 원목인지 장판인지 대리석인지 자기가 자기집인데 잘봐야지 ㅜ
오늘을살자 · 2025년 7월 23일
원목이 진짜 비새거나 누수에 난리나더라고요 그래서 잘봐야하는건맞는데 이분들은 악질중 악질이네요
헤일리 · 2025년 7월 23일
중개인이 이런 부분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을텐데..
호잇 · 2025년 7월 23일
와 ㅠㅠ 맞아요 원목은진짜 불편한게 많더라구요
와사비 · 2025년 7월 24일
다행히 좋은 대처를 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네여 별 사람들이 다있군요
빅토리아 · 2025년 7월 24일
진짜 원목이 좋다고 해서 가격도 비싸고 그런데 . ㅠㅠㅠ 다 장단점이 있나 보군요 .. ㅠㅠㅠ
무슈 · 2025년 7월 24일
ㅇ저희집도 원목인데 .. 그런게 있었군요
아아정복 · 2025년 7월 24일
원목마루의 장단점이 있나보네요
아기새 · 2025년 7월 24일
원목이라고 해서 장점만 있는게 아니었군요 . 원목이 확실히 다른거보다 비싸기는 하던데요 ㅠㅠㅠ.
팽오리 · 2025년 7월 24일
헐 이런걸로 트집잡는경우도있네요? 너무 충격이네요ㅠㅠㅠ저희도 원목인데ㅠㅠ
눈사라밍 · 2025년 7월 24일
이런 특약조항도 있다니 계약할때 진짜 꼼꼼하게 잘 봐야겠네요ㅠ
김다솔이에요 · 2025년 7월 24일
원목마루라고 다좋은게아닌것 같아요
미니멀부자 · 2025년 7월 24일
아 이런경우도 있네요.. 장단점이 있다고는 생각했는데...
베테랑킴 · 2025년 7월 24일
이렇게까지 트집잡을 수 있다는 경우도 생각해야겠군요...
치킨 · 2025년 7월 24일
원목마루가 훼손된 것이 아니고 당사자들이 두 차례나 방문하여 확인했으면 그거가지고 뭐라할 거는 아닌 거 같은데..
말차우유 · 2025년 7월 25일
원목은 물이나 습기 때문에 잘 들뜬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걸로 트집 잡을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어요
스위티자몽 · 2025년 7월 25일
매매계약서 특약에 도배장판 관련 내용이 있어서 트집 잡기 더 쉬웠을 것 같아요. 그래도 잘 해결되어 다행입니다
새우깡 · 2025년 7월 30일
약간 사이다가 느껴지는 글이네요
뽀뽄 · 2025년 11월 12일
매수인의 과도한 요구에 현명하게 대처하신 판단이 정말 돋보입니다! 덕분에 좋은 사례를 배웠습니다.
함께 보면 좋은 글
돈의 흐름은 부동산이 아니고... - 2024년 1월 23일 브리핑
리얼랭커스24. 01. 28.
곰팡이 문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효쥬님23. 10. 12.
아파트 소음 문제는 어쩔 수 없네요..
포근포근쿠키23. 10.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