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사우루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이웃이었을까

너구리읽는 데 약 3

지난 4월 우리집과 마주하고 있는 옆집 이웃이 이사를 갔다.(우리는 한층에 3세대가 산다) 초등1~2학년 정도되는 남자 아이 둘을 키우는 부부였다. 아이들이 늘 집에서 신명나게 소리를 지르며 노는 바람에 꽤나 시끄러웠던 이웃으로 기억된다.

 

물론 삶에 지장을 정도로 시끄러웠던 건 아니어서 나와 꼬북이는 "재네들 또 시작이네~"하면서 그냥 웃어 넘기곤 했다.

 

다만 1년이 넘도록(작년 3월 입주) 이웃 부부와는 단 한번도 제대로된 스몰토크를 나눈 적이 없다. 가끔 이웃집 남편과는 출근길에 엘레베이터 앞에서 자주 만나곤 했지만 "아..안녕하세요.."라는 낮은 목소리로 서로 인사만 나눴지 일체 사적인 대화는 하지 않았다.

 

또 출근길, 옆집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이웃집 남편이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때까지 문 앞에 멈춰 있곤 했다.

 

딱히 저 사람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엘레베이터를 함께 기다리며 나눌 대화가 없다 보니 그 순간의 어색함이 싫었다. 함께 타면 또 엘레베이터 안에서도 함께 침묵의 동행(?)을 해야 하는데 이것도 고역처럼 느껴진다.

 

나는 업무상 매일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 작은 스몰토크 쯤은 껌이다. 어렵지 않다. 그런데 왜 이웃과는 그게 안되는 것일까. 너무 가까워져도 피곤하고 멀어져도 피곤한 사이이기 때문일까.

 

이제 이들이 이사를 갔으니 출근길 엘레베이터 앞에서 어색한 마주침은 더이상 없어졌다. 나와 꼬북이는 출근을 한 상태여서 이삿날 이들과 따로 인사를 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우리의 신혼생활 첫 이웃이었던 부부와 작별(?)을 했다.

 

우리의 옆집 대문 앞. 아직 누가 이사왔는지 알지 못한다.

놀라운 점은 우리가 아직도 새로 이사 온 이웃이 누군지 모른다는 점이다. 대문이 열려져 있어 오며가며 슬쩍 집 내부를 봤다. 누군가가 열심히 청소 중이다.

 

이들은 입주 청소업체 사람들이었다. 이사 올 주민이 아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집 내부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이웃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오며가며 엘레베이터 앞에서 단 한 번도 이웃 주민과 마주치지 못했다. 어차피 마주쳐도 또 불편할 테지만..한층에 살면서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상황이 조금은 기이하게 느껴졌다.

 

나는 뭔가 심통이 났다. 그리곤 꼬북이에게 말했다. "아니 그래도 이사를 왔으면 시루떡을 돌리든, 이사를 왔다고 인사를 오든 신고를 해야하는 거 아냐?"라고 했더니 꼬북이는 "우리도 이사왔을 때 이웃들한테 아무것도 안했어. 기억안나?"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도 이사를 왔을 때 이웃에 떡을 돌린 기억이 없다. 나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ㅎㅎ "완전 내로남불이네~!"라며 꼬북이가 나를 비웃었다.

 

갑자기 전 이웃이 생각났다. 엘레베이터 앞에서 이 남편과 마주칠 때마다 '안녕하세요' 인사는 항상 내가 먼저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인사를 단 한 번도 밝게 웃으며 받아준 적이 없다. 그래서 가끔은 '이 남편이 나를 싫어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처럼 '어색하고 불편해서겠지'라고 생각했는데...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혹여,,시루떡을 주지 않아서 일까,, 아니면 '우리가 살면서 낸 생활소음이 옆집에 들릴 정도로 시끄러웠나'라는 생각이 든다.

 

나와 꼬북이는 둘 다 의견 충돌이 많은 편이라 서로 고성까지는 아니지만 가끔 언성을 높이며 서로의 의견을 강하게 내세울 때가 있다. 옆집 입장에서 싸우는 것으로 들렸을 수도 있겠다.

 

이웃과 관련된 얘기를 한 것은 최근 업무 미팅 때 만난 사람과 나눈 대화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물어보니 몇달 전 이사 온 옆집 부부가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경찰이 왔다고도 했다. 싸우는 소리가 소음 수준이라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단다.

 

반상회에서 이 안건을 던졌고 이 집 부부에게 반상회장이 주의를 줬지만 여전히 싸움은 멈추지 않았단다. 결국 자기 아내와 옆집 아내가 심하게 다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후 출근길에 옆집 사람들과 마주칠 때마다 불편한 감정을 느꼈고 이게 회사에 와서도 스트레스라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라고 한다.

물론 우리 부부가 저 수준은 아니겠지만 떠난 이웃이 우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을 수도 있다. 나는 그저 '저들' 때문에 '불편'하다고만 생각했지 저들이 우리를 불편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층간소음이 일상화된 요즘 아래집이나 윗집과 갈등을 겪는 상황은 많지만 옆집은 대체로 싸울 일이 많이 없는 편이다. 그래도 동네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존재인 만큼 '조금의 노력을 더해' 잘 지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먼저 밝게 웃으며 다가갔다면 함께 지내는 기간 동안 서로를 불편해하지는 않지 않았을까. 전 이웃을 생각하며 '나는 그들에게 어떤 이웃이었나'를 생각하게 됐다.

 

예전 유치원생 때 기억이 난다. 나는 대구에 있는 복도식 주공아파트 1501호에 살았었다. 1호는 구조상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15층에 내려서 집에 가려면 복도에 있는 이웃집들을 모두 거쳐가야만 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두 대문을 열어놨다. 옛 자장면집 입구에나 있을법한 나무구슬로 된 가림막이나 방충망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자연스레 오며가며 이웃들과 인사를 하고 지냈다. 가끔 반찬도 주고 받고 방과 후에 집에 엄마가 없으면 옆집에 가서 밥도 얻어 먹곤 했던 것 같다. 이웃사촌이란 말은 그래서 생긴 것 아니겠나.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요즘은 이웃과 왕래가 없다.

 

이웃은 참 애매한 존재다. 너무 멀면 정이 없고, 너무 가까우면 또 부담스럽다. '함께 살아가는' 것보다는 '서로 피해주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미덕처럼 여겨지는 요즘, 이웃은 점점 얼굴 없는 존재가 되어간다.

 

이웃과의 관계는 어쩌면 거울 같기도 하다. 내가 미소 지으면 미소로 돌아오고, 내가 무심하면 무심함으로 남는다. 조금만 먼저 인사하고, 조금만 먼저 웃어준다면 얼굴 없는 이웃도 얼굴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새 이웃과는 새로운 출발을 해보고 싶다.

 

사진 픽사베이

🌸 뉴글 인기 콘텐츠 더 보기

댓글 17

  • 크크크 · 2025년 5월 19일

    요즘 이웃 관계는 정말 ‘아예 모르거나, 진짜 불편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래도 말씀처럼, 먼저 밝게 웃고 인사하는 한 번의 용기가

    서로 편한 사이가 될 수 있는 시작일지도 모르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박다혜 · 2025년 5월 19일

    이 글 보니까 예전에 반찬 주고받던 우리 엄마 생각나요. 지금은 그런 문화가 사라진 게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론 조심스러워진 시대 같기도 해요. 이웃 관계 진짜 어렵죠...

  • 안젤라 · 2025년 5월 19일

    저는 이사 첫날 옆집 아주머니가 인사하러 오셨는데 제가 그때 급하게 나가느라 인사를 못 받아서, 그 뒤로 1년간 어색했땁니다~~ ㅎㅎ

  • pipioi · 2025년 5월 19일

    엘베에서 만나면 어색해서 괜히 핸드폰 들여다보는 거 국룰임

  • 주알못 · 2025년 5월 20일

    우리 층에 유일하게 서로 마주쳐도 인사 안하는 집이 있습니다 다른 집들과는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하는데요 바로 우리 앞집은 성격이 예민하고 까탈스러워서 무시하고 삽니다 여름철에 문 열어놓고 생활하시는데 난 우리집 들어가려고 번호 누르고 잇는데 갑자기 나와서 문콱 닫음 ㅋㅋㅋ 내가 너네집 보기라고 했어요? 어이가 없어서 ㅋㅋㅋ 그리고 마주치면 눈 위아래로 사람 훑음 진짜 이상함 아무도 그 사람이랑 인사 안합니다 이런 이상한 이웃과는 상종을 안하는게답이예요

  • 웃으면된다고생각해 · 2025년 5월 23일

    요샌 옛날이랑 진짜 너무 다른듯ㅋㅋㅋㅋ예전엔 옆집아주머니 집가서 밥 먹고 그랬는데 난 지금 옆집에 누가사는지도 모름ㅇㅇ

  • 브라더 · 2025년 5월 23일

    요새는 이사왔다고 아랫집에 선물 주면 안받는 세상입니다.

    선물 받으면 마음놓고 애들 뛴다고요...

  • 마라 · 2025년 5월 23일

    옆집 나오는 소리 들리면 엘베타고 내려갈때까지 안나가는거

    나만그런거아니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샤인머스캣 · 2025년 5월 24일

    생각해 보면 요새는 옆집 나오는 소리 들으면 최대한 안 마주치려고 하고..🥲점점 정이 없어지는 시대인 것 같긴 해요😂 이사떡이란 말도 점점 희미해져가고..😅

  • 우린깐부 · 2025년 5월 26일

    정말 웃겨요~~ㅋㅋㅋㅋ요샌 진짜 교류가 아예 없는것 같은데~~~저도 괜히 어색해서 눈 피하게 되더라고요??~~ㅋㅋ오픈채팅으로 대화해도 막상 만나면 서먹^^~ㅋㅋ

  • 나안아... · 2025년 5월 26일

    마자요!!저도 앞집언니랑 이것저것 물건 주고 받고 하는데도 막상 만나면 목례만하고 쌩 지나가용ㅋㅋㅋ괜히 어색쓰,,;;친해지고시퍼도 몬가 어려워용,,

  • 인생은아름다워 · 2025년 5월 30일

    복도에 음쓰내놓는 이웃 안만나면 다행이죠... 하 그때 생각만 하면 어질

  • 팽오리 · 2025년 8월 14일

    요즘은 진짜 옛날같지않아서 이웃과 담 쌓고 사는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 훠이 · 2025년 8월 17일

    요즘 옆집이 누군지 잘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는 다행이 인사하네요

  • 베테랑킴 · 2025년 8월 29일

    그러게요 요즘은 진짜 아예 이웃주민의 교류가 없으니...

  • 빅토리아 · 2025년 9월 23일

    진짜 요즘은 이웃들간의 교류가 별로 없어서 삭막해지는거 같아요 .. ㅎㅎ 그냥 가벼운 인사정도..

  • 호잇 · 2025년 11월 11일

    요즘은 앞집 옆집 다 모르고 살죠 .. ㅎㅎ 좋은 이웃을 만나고 싶네요

함께 보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