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사우루스

저요? 경찰 제복도 못믿은 중개사야요~

양콩읽는 데 약 4

"중개사님이 왠지 저를 못 믿으시는 것 같아서 제가 보여드리려고 ...."

라고 하면서 그가 갑자기 외투의 지퍼를 내리더니 확 벗어제꼈다.

헉!!

춥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했던 1월 중순 어느 날 오후, 중년 남성이 전화를 했다.

반전세에 대해 문의했는데 월세를 조정해달라는 말부터 여러차례 하길래 집이나 본 후에 조정해보자고 했다. 그래도 자꾸 월세 부담을 어필하길래 입주 날짜는 언제냐고 물었더니 5월 말경.

그건 너무 길다 3월부터나 알아보시는 게 좋겠다 했더니 조건이 맞으면 3월에도 입주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이때부터 이 손님에 대한 관심도가 줄어들었다.

3일 후인 토요일에 방문하겠다길래 건성건성 끊었고, 당일인 토요일에는 전화가 없었다. 한번 가겠노라 해놓고 감감무소식인 손님들이 많기에 그를 잊었고 퇴근을 서둘렀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전화하여, 이제 출발하려 한다길래 당황했다. 급한 일로 외출했다고 얼버무렸더니, 이왕 출발했으니 비번이라도 달라 조심히 보고 나오겠다 했다. 마침 공실이라 그렇게 했다. 집을 보고 난 후 마음에 들었는지 다시 월세를 좀 깎아달라 도배를 해달라 여러차례 전화하여 요구사항을 말했다.

계약하려나보다 했는데 월요일에 다시 방문하여 갑자기 매매를 보여달라 했다. 그러더니 또 다시 급 관심을 표하며 계약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그 조건 역시 내키지가 않았다.

1.집을 매매하려면 담보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현재 직장대출이 있어서

2.수개월 후 퇴직 시에 퇴직금으로 개인대출을 상환한 후 담보대출을 받아야 한다.

3.일단 현재 가진 보증금만으로 우선 입주한 후에

4.4개월 후 퇴직 시에 담보대출을 받아 잔금 및 소유권이전등기를 하겠다는 조건.

야야~ 아무리 불경기라도 이건 못하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매도인은 빨리 이사나가야 하는 상황이라서 어떻게든 계약을 진행하고 싶어했다.

뭔가 확 뿌리치지는 못하고 머릿속에서만 내보내기 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그가 집을 한 번 더 보겠다고 방문하였다. 집을 꼼꼼히 둘러보고 난 후 갑자기 거실 한가운데 푹 주저앉더니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느냐고 물었다.

엥 이건 무슨 상황???

매도 욕심이 간절한 매도인이 서둘러 커피를 내왔고, 커피를 순식간에 후르륵 들이킨 그가 갑자기 말했다.

"여러 상황 때문에 우선 몇개월간은 반전세로 거주하다 그 이후에 집을 매수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을 보게 된 후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당장 매매계약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입주 후 잔금이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중개사님이 나를 못 믿고 진행을 안 해주시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를 믿게 하려고 준비를 해왔습니다"

준비??

그는 갑자기 외투의 지퍼를 내리더니 확 벗어제꼈다!

벗어제낀 외투 속으로 경찰 제복이 드러났다.

계급장과 성명이 선명히 빛나는 경찰 제복.

더불어 명함을 건네면서 자신을 믿고 계약을 진행해달라고 했다.

YL파출소장 OOO.

헉...이게 무슨 상황. 매도인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처음엔 어리둥절하던 매도인의 눈빛이 나와 마주치자 간절함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 험한 세상에 제복 입은 모습을 봤다고, 그리고 명함을 봤다고 그걸 믿을 수 있을까?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지 몰라도 나는 왠지 없던 의심 세포가 바글바글 더 늘어났다.

부동산 관련 사고 중 소유자 신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임차인과 매수인이 피해를 본 사기 사건이 많다.

그렇다고 진정한 소유권자인지 여부만 확실히 확인해야 하는 건 아니다. 임차계약자나 매수인의 경우에도 신분을 철저히 확인하여야 한다. 또한 자금조달 가능 여부 역시 어느 정도는 파악하여야 제2의 피해도 막을 수 있다.

어찌보면 그는 솔직하였지만, 솔직함을 나타내는 방법이 중개사인 내 눈에는 더 큰 의구심으로 다가왔다.

월세를 보러 왔다가 갑자기 매매로 전환하고 또 입주와 잔금 및 소유권이전등기를 동시 이행하지 못하는 불안전함. 그것을 경찰제복으로 상쇄시키겠다고?

필요 이상의 간절한 투지를 발사하는 남성의 시선을 외면하고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말했다.

아 직원들이 볼까봐서요...

그제서야 둘러보니 경찰차 한 대가 스쳐가고 있었다.

하필 이때 경찰차가 지나가 주신다고...?

아... 나는 더더욱 그를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계약부터 하자는 그를 일단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날 밤 참으로 많은 고민을 했다.

일단 해당 경찰서로 가서 그 사람이 진짜 거기에 근무하는지 들여다 보려했는데 늦은 시간이라 여의치 않았고, 그렇다고 전화로 이러이러한 사람이 거기 소장이 맞느냐고 물은들! 그래서 맞다고 한들! 요즘은 신분 사칭이 비일비재한 사회인데 관등성명이 같다고 어찌 믿겠는가..

궁리끝에 파출소 근처의 중개사에게 보안을 요청하며 신분확인을 해봐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리고 사무실 cctv에 찍힌 인물 사진을 캡처해서 보냈다.

그리고 30분 후 답이 왔다.

"맞아요 그분이 여기 파출소장님이시래요. 친분 있는 경찰관이 확인해줬어요. 맞아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해당 파출소 행사 사진까지 보내주었다.

나는 퇴근을 미루고 계약서 특약사항을 빼곡히 작성하였다.

-매도인 매수인이 쌍방합의하여 중도금 지급일에 매도인이 이사나가고 매수인이 입주하기로 함. 매수인 입주 시부터 각종 공과금과 목적물에 대한 관리 및 하자 보수는 매수인 책임하에 진행하기로 함.

-매도인 혹은 매수인 책임으로 잔금 및 소유권이전 등기 불가 시는 귀책 사유자가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계약을 해제하기로 함. 손해배상예정액은 각각 50,000,000원으로 약정함

그리고 피곤한 밤을 소등하였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남성에게 아니 파출소장님께 전화를 하여 계약을 진행하자고 했다. 계약할 때 가족들도 왔는데 생각보다 빨리 자금이 융통되어 소유권이전일을 당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괜한 걱정을 하느라 손님을 의심했구나 하는 반성을 하는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하는 중개업계의 현실을 고스란히 경험한 날이기도 했다.

중개사도 손님을 못 믿겠으면 계약진행을 안 합니다. 안 해야 맞습니다.

그런데 당근마켓 같은 직거래 플랫폼에서 부동산 거래를 하시다니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저한테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저요? 경찰 제복도 못 믿은 중개사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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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8

  • 머니트리 · 2025년 4월 30일

    멋지시네요! ㅋㅋㅋㅋ 양콩님같은 중개사가 많아지면 얼매나~ 든든하게요~ ㅋㅋㅋ

  • 수미칩 · 2025년 4월 30일

    실제로 소유자 아닌 사람이 전세 매매 계약 진행하는 경우 생각보다 많대요~~

  • 팔로우미 · 2025년 4월 30일

    진짜 제복 입었다고 그대로 믿는시대 지낫지 눈뜨고 코베이는 시대!

  • 마포경찰관 · 2025년 4월 30일

    읽다가 묘하게 스릴감 있었네요ㅋㅋㅋㅋ 뉴글에서 긴장감 있는 글을 읽다니 ㅋㅋㅋㅋㅋ

  • 평화주의자 · 2025년 4월 30일

    전 커피 서빙 나왔을때가 하이라이트인줄 알았어요 ㅋㅋㅋㅋㅋㅋㅋ 제복벗는 장면에서 급전개 ㅋㅋㅋㅋㅋ!!!!

  • 파죽지세 · 2025년 4월 30일

    계약만 급하게 하려는 사람들 보면 무섭긴할듯요

    뭔가 급하면 의심감

  • 신도시맘 · 2025년 4월 30일

    그래도 끝까지 확인하고 책임있게 계약한 모습 멋있네요 고생하셨어요~

  • 미스터차차 · 2025년 4월 30일

    명함 위조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저런 중개사라면 믿고 거래 계속 하구 싶죠ㅜㅜ

  • 방방곡곡 · 2025년 5월 1일

    부동산 직거래는 아직 좀 망설여집니다.

  • 샤인머스캣 · 2025년 5월 1일

    ㅋㅋㅋㅋㅋ글이 너무 웃겨요😆요새 하도 이상한 사람이 많으니까 양콩님 마음도 이해 됩니다!! 그래도 나쁜 엔딩이 아니라서 다행인거 같아요ㅎㅎㅎ

  • 웃으면된다고생각해 · 2025년 5월 1일

    제복 개웃기네ㅋㅋㅋㅋㅋㅋㅋ얼마나 자존심상햇으면 저랫을꼬ㅋㅋㅋㅋ믿음은 주고싶고 나엿어도 의심할듯 ㅇㅇㅋㅋ

  • 집좀사자 · 2025년 5월 2일

    두 분의 심정 다 이해가 가는 상황이네요. 많이 웃픈 상황입니다. 그래도 중개사님 같은 중개사를 만나면 안심 될 것 같습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 나안아... · 2025년 5월 3일

    연락 됐다 안됐다 갑자기 급하게 계약하겠다 하면 저라도 의심 됐을 것 같아용...!!당장 눈 앞의 이익을 찾는 중개사도 많은데 고생 많으셨어용!!!

  • 팽오리 · 2025년 7월 29일

    진짜 전세 매매 계약을 진행할때 실 소유자 확인 꼭 해야겠네요

  • 호우호우 · 2025년 8월 9일

    공인중개사는 솔직히 다 못믿어서 계약할때까지 계속 못믿었는데

  • 팽오리 · 2025년 10월 8일

    의심하고 의심을 또 해야되는데 막상 그러면 기분나쁜티를 다 내니ㅠㅠ

  • 눈사라밍 · 2025년 10월 10일

    이런 중개사님들이 앞으로 점점 많아지길 기대해봅니다!!

  • 호잇 · 2025년 11월 13일

    대단하신거 같아요!! 의심에 의심 필요한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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