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전쟁이 시작된다.
양콩읽는 데 약 3분
오늘의 주인공은 단독주택이다.
94년도에 옆집과 나란히 건축된 쌍둥이 주택인데 옆집은 1년 전에 누군가가 사서 멋지게 리모델링을 하였고, 이 집은 내가 매매계약을 진행했다.

주거용 건축물 중에 가장 일이 많고 계약 성사율이 낮은 중개대상물이 단독주택이다.
그래서 큰 기대를 안하고 블로그에 올려놓았는데 연락이 와서 함께 가서 내외부를 훑어보았다. 다행히 마음에 들었던지 그 후로도 직접 가서 주변을 둘러보고 쌍둥이 주택이라 옆집에 양해를 구해 집 내부를 비교해보는 둥 꼼꼼히 살핀 뒤에 계약 의사를 밝혔다. 다만 수리할 곳이 너무 많으니 금액좀 조정해달라길래 다행히 잘 절충이 되어 계약 일정이 잡혔다.
계약서 특약사항에 매매가에서 리모델링 및 하자보수 비용이 절충된 점을 기재하였고,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도 리모델링 및 수선을 요한다는 내용을 칸칸마다 적었다. 더불어 노후 건물이라 내외부 균열 상태 및 육안으로 확인된 누수는 없으나 노후 건물 특성상 보이지 않는 곳에 누수가 진행되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하였다.
계약일은 6월 중순이었고 잔금 일은 7월 중순이었다.
그런데 계약과 동시에 전쟁이 시작되었다. 쭈욱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이 단독 주택은 집을 내놓으면서 매도인 가족이 미리 이사나가 공실 상태였는데, 30년 가까이 되어 여기저기 노후된 집이 한달 가량 내린 비에 온전할 리가 있겠는가...
심지어 몸만 빠져나가고 내부에 온갖 짐들은 그대로 둔 상태여서 잔금일 이전에 미리 짐을 치워주기로 했었는데, 그눔의 비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잔금 2일 전까지도 짐을 다 못 치웠다.
잔금 시간을 잡으려고 매도인에게 전화했더니 짐을 다 못빼서 어찌 하냐고 고민하길래, 매수인에게 상의했더니 흔쾌히 잔금시간을 1주일 미뤄주었다.
그런데 차라리 예정대로 잔금을 치렀으면 문제가 없었을래나... 매수인이 잔금일을 미뤄주고 생각해보니 이 집이 별로 내키지 않았다. 와이프가 전원주택 전원주택 노래를 불러서 계약하긴 했는데 계약 이후 새삼 살펴보니 정부 정책으로 비거주 주택에 대한 규제도 복잡해진데다, 인테리어 업자를 보내 수리 견적를 뽑으라 했더니 긴 장마비로 집 내부 여기 저기서 물이 죽죽 흐르고 곰팡이도 슬었다는 소리를 들은 게 기억났다.
그래서 잔금 날짜를 연기해준 다음 날 중개사무소로 전화하여
매수: 내부에 누수 및 하자가 많아서 도저히 계약을 이행할 수가 없다.
중개사: 누수 및 하자가 많은 건 계약 시부터 알고 있었고 그로 인해 금액이 절충되었지 않느냐
매수: 이건 단순한 누수가 아니다. 누수는 세면대나 타일 등에서 물이 조금 비치는 것인데 이건 아예 벽 타고 쭉쭉 쏟아진다...
매도인한테 전달하니 황당해했다. '다 알고 계약하지 않았느냐 그 뒤로 더 비싼 금액에 계약하자는 연락도 많았다'. 중도금까지 넘어가고 잔금을 하루 앞둔 상태인데 누가 쉽게 물러서겠는가.
매수인은 아침 일찍부터 단독주택으로 오라고 난리고 매도인은 내가 가봤자 들을 소리 뻔하지 않냐며 안 간다 하고....혼자 이리 갔다 저리 전화하다 하다가 정신 산만해서 결국 둘 다 단독주택이 아니라 중개사무소로 오라고 했다.

계약 시에 중개사로서 계약과 관련하여 고지할 건 다 했고 계약서나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도 꼼꼼히 기재했기 때문에 분쟁이 생겨도 해결할 자신이 있었다. 일단 두분이 서로 충분히 논쟁을 하게 하고 나는 경청만 했다.
매수인은 계약을 파기하고 싶다. 매도인은 곤란하다. 서로 1시간 가까이 각자 하고싶은 말만 하다가 갑자기 배고프다고 점심 먹으러 간다고 나더러도 같이 가자 하길래, 약속 있다고 두분이 가서 드시라 했다.
소화가 잘 될까...저 조합으로 밥을 먹고 싶을까... 사무실 바로 앞 짬뽕 집에서 짬뽕을 먹길래, 나는 조금 떨어진 추어탕 집에 숨어서 추어탕을 먹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매도인한테 전화해서 어찌할 거냐 물었더니, 계약파기 한다면 중도금은 돌려주지만 계약금은 몰수하겠다는 입장. 그래서 '집 내부가 곰팡이 천지가 됐으니 속상한 건 당연하지 않냐...청소비라도 한 200~300 준다고 해보자' 제안했더니 300만원에 OK! 했다.
매수인한테 전달했더니 '나는 계약을 파기하고 싶지 돈 몇푼 깎으려는게 아니다' 라고 정색을 하길래...
- 계약금만 지급한 상태라면 계약금을 포기하고 계약을 해제하실 수 있다.
그런데 중도금이 지급됐으니 이행기에 들어간거고 쌍방합의 되지 않는 한 일방적 계약해제는 불가능하다.
그러면 소송으로 가야 하는데 계약서나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리모델링 및 하자 보수 비용으로 매매가가 감액된 부분이 기재돼 있고 모든 부분에 수선이 필요하다고 되어 있으니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기 힘드실 거다.
아마 소송으로 가도 내부에 곰팡이가 생긴 것에 대한 손해배상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골치 아프게 소송 가느니 금액을 절충하고 마무리하는 게 현명하지 않겠나..-
고 내 의견을 피력했다.
하루 지나서 매수인이 500만원을 감액해주면 잔금을 이행하겠다고 연락이 왔고, 매도인이 또 하루를 고민하더니 수락했다. (다행히 이분들은 하루씩만 주면 결정을 내렸다.)
결국 잔금 날이 다시 잡히고 문제없이 마무리되었다.
골치아플 것 같았는데 매수인도 매도인도 너무 빡빡하지 않고 좋은 분들이어서 잘 정리되었다.
계약을 진행하다 보면 천태만상의 많은 사건들이 발생하지만, 같은 사건이라도 사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좋은 분들이었으니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도 함께 짬뽕을 먹을 수 있었던 거다.
일이 이렇게 해결된 것도 중개사인 내가 다 복이 많아서 라고 생각하고, 무더위와의 전쟁쯤은 우습게 넘겨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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