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사우루스

받은 만큼만 한다!

양콩읽는 데 약 3

빗방울이 스스로도 지친듯 유리창을 힘들게 쓸어내리던 여름날 오후, 누군가가 사무실 문밖을 쭈뼛거리다 돌아서는 게 보였다. 내다보니 A동 3층 소유자 어머니. 나는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리고 며칠 후 중개보조원이, A동 3층 매물이 나온 것 같은데 왜 우리한테는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 아파트에 대해 가장 많은 거래를 하는 우리 중개사무소에 매물을 내놓지 않고 멀리 떨어진 사무소에 내놓은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이유를 너무나 잘 안다.

5년 전쯤 매매계약을 하면서 생긴 일이다.

두달 기한으로 매매계약을 하고 계약금 3000만 원이 넘어갔다. 계약서를 작성한 지 1주일쯤 지나서 매수인이 찾아왔다. 살고 있는 집의 계약이 해제되어 잔금일에 잔금이 준비 안 될 수도 있으니 한달만 연기해달라고 했다.

계약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혹시나 가능할까 싶어 매도인한테 연락했더니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속이 탄 매수인이 매도인을 직접 찾아가 사정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같았다고 한다. 매수인은 그 뒤로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매수인의 의사와 태도로 보아 약정된 잔금일에 잔금 이행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걸 모두가 알았다. 그렇지만 계약을 해제하려면 매수인이 포기 의사를 확실히 표해야 하고, "잔금이 힘들다"는 매수인의 의사만으로 계약을 해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잔금일 연기해달랬다가 거절당한 매수인이, 잔금일 전에 순순히 계약금을 포기하고 계약을 해제하겠다고 해줄리는 만무했다.

어쨌든 잔금 이행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걸 인지한 매도인도 이사 준비를 멈추었다.

드디어 잔금날, 아무리 연락해도 매수인이 연락을 받지 않자 매도인이 말했다.

"오늘 안 나타났으니 이제 이 계약은 다 끝난 거잖아요. 그러니 다시 집을 팔아주세요."

그러나 약정한 잔금일에 계약 이행을 안 했다고 해서 바로 계약이 해제되는 건 아니다. 우리 법에서는, 이런 경우에 상대방에게 이행의 최고를 하고 그 최고 기간까지도 이행을 못할 경우 비로소 계약금을 위약금으로 몰수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것으로 정리하고 있다.

나는 매도인이 계약금을 몰수하고 계약을 해제하려면 계약 이행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는 증빙을 하여야 하고, 그 대표적인 방법은 등기권리증과 소유권이전 관련 서류를 완비하여 법무사무소 등에 보관 후 매수인에게 내용증명을 발송하여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매도인은 계약금 3000만원의 수입이 생겼다는데 이미 고무되어 있었다. 이사 갈 집 정식 계약을 하기 전에 멈추어서 3000만원을 고스란히 챙기게 된 것이다.

중개사인 내가 아무리 계약해제 절차에 대해 설명해도 '나도 법조계에 사촌이 있으니 알아서 하겠다.'며 신경끄라고 했다.

며칠 후 나는 전화하여 중개보수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매도인 어머니가 사무실 문을 거세게 밀어젖히고 들어와서 어처구니 없다는 듯 비웃었다.

"계약이 깨져서 잔금도 안됐는데 수수료 달라는 말이 나와요?"

못 준다는 것이다. 나는 중개사의 잘못으로 계약이 해제된 게 아니니 중개보수는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했고, 매도인 어머니의 비난과 비웃음을 듬뿍 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날 밤 아들인 매도인으로부터 반말 욕지거리도 들어야 했다.

어이없고 기분 나빠서 내용증명을 보냈더니 어느 날 어머니가 와서 5만 원권 몇 장을 담은 봉투를 탁자에 던졌다.

"우리 사촌이 법조계에 있다고 했죠? 다 알아봤더니 계약 깨졌으니까 한 푼도 안 줘도 되지만, 우리가 독한 사람들이 아니라서 밥값이라도 하라고 주는 거예요."

앞으로 좋은 값에 팔아서 수수료 받으면 될 걸 쓸데없는 욕심을 부린다고 나무라듯 잔소리를 하고 갔다.

대법원 전자소송을 하면 간편하게 받을 수 있지만 거기서 참았다.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몇 달 후 매도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매수인이 계약금 반환 소송을 걸어서 난감하게 됐는데, 법조계에 있는 사촌을 통해 알아보니 중개사가 매도인한테 유리하게 확인서를 써주거나 증인으로 출석해서 도와주면 된다고 했단다.

증인으로 출석해서 자기들 입장을 잘 대변해달라고 했다.

거절했다.

바쁘면 확인서라도 좀 써달라 했다.

역시 거절했다.

나는 중개업 20년 동안 의뢰인들의 웬만한 부탁은 다 들어주는 걸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필요한 경우 내용증명이나 소명서 같은 것도 써주고 문제 해결을 도와준다. 그런데 이 매도인은 정말 얄미워서 해주기 싫었다.

못해준다 했더니 중개사가 왜 그런 것도 안 해주냐고 소리소리 질렀다.

그래서 말했다.

"중개사의 귀책사유로 계약이 해제된 경우가 아니면 중개사는 정당하게 중개보수를 받을 수 있는데, 제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것을 알면서도 5만 원권 몇장 던져주고 간 거 잊으셨나요?

그리고 분명히, 계약해제에도 절차가 있다는 걸 상세히 설명드리고 서류 완비 후 이행의 최고를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법조계의 사촌이랑 알아서 한다고 신경끄라셨으니, 증인 출석이나 확인서도 사촌이랑 알아서 하시죠.

저는 중개사인 저를 대우한 만큼의 역할만 하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어떤 도움을 요청하려면 먼저 기본적인 의무를 다 하시기 바랍니다."

그 뒤로 수년이 흘러도 A동 3층 매물은 접수된 적이 없다.

물론 나랑 거래하기 불편할 것이다.

그런데 나도 그런 집 거래하기 싫다.

중개사는 무한 봉사자가 아니다.

계약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전문직업인일 뿐이다.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있을 때, 그 이상의 도움도 기꺼이 나올 수 있다.

댓글 19

  • 눈사라밍 · 2026년 7월 22일

    이 이야기를 듣고보니까 저도 이런생각이 들 것 같네요

  • 김차차 · 2026년 7월 22일

    A동 3층 매물이 안 나오는 이유가 이런 사정이었군요;; 사진이나 조감도랑 실상은 또 다를 수 있겠는듯 한데, 그 뭐 생긴다던 거 혹시 영향 있나 싶네용? 상황이 생각보다 복잡한 듯;;

  • 껄껄껄 · 2026년 7월 22일

    살다보면 이런사람 저런사람도 있지만 받은만큼 한다는 말 공감가요

  • 하놩 · 2026년 7월 23일

    진짜 법조계에 사촌이 있었을까요..? 절차를 알려줘도 본인만의 아집이있는 사람은 당해봐야알더라고요..

  • 똥깡쥐맘 · 2026년 7월 23일

    A동 3층은 출퇴근 시간에 중구난방일 거 같지 않나요;; 저도 회사까지 거리 좀 있는데 이렇게 복잡한 일 아니었으면 한 번도 안 찾아봤을 듯 ㅎㅎ

  • 팽오리 · 2026년 7월 23일

    받은만큼만 한다는건 어느상황에나 해당되는 것 같아요

  • 곰탱이 · 2026년 7월 23일

    A동 3층 가격이면 B동이나 C동 가는게 낫지 않을까 싶음;; 요즘 다른 곳도 수요 많고 사람들이 많으니까 충분히 선택할 가치가 있음;;

  • 레드벨벳 · 2026년 7월 23일

    사람들 얘기 들어보니까 한 번의 거래가 이렇게 복잡할 수 있구나 싶더라구요 ㅎㅎ 그리고 이런 사건 속에서도 수수료 문제로 서로 감정 상하는 거 진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음. 여전히 A동 3층의 상황이 조금 애매하게 느껴지긴 하네 근데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걸 보니 부동산 시장이 참 흥미롭기도 하네 ㅎㅎ

  • 한대지 · 2026년 7월 23일

    근데 이런 복잡한 상황이 생기니까 매물이 안 나오는 것도 이해가 가긴 하네 결국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하는 건 일반 사람들 같음 진짜 진행될지는 별로 신뢰가 안 간다 같음

  • 세르미온느 · 2026년 7월 24일

    A동 3층 매물 얘기 들으니까 저도 예전에 그 근처 갔던 기억이 나네요 ;; 사실 그 일대 교통 꽤 좋고 좀 아쉽긴 한데 그 뭐 생긴다던 거... 그거 때문에 상황이 복잡해진 것 같아요 솔직히 존버하는 사람들도 많겠다 싶더라고요 ;;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면 일반 사람들은 진짜 힘들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 호롤롤 · 2026년 7월 24일

    절차만 잘알고 있어도 좋았을거같아요 이런 복잡한 상황일대 너무 힘들거같네요 ㅜㅜ

  • 무난무난이 · 2026년 7월 24일

    이런 일도 있고 지난 시장 분위기는 이해가 가네요 개인적으로 A동 근처 낙후 지역 확장과 현재 상황의 관계가 궁금합니다 요즘 금리 제한으로 매물 부족은 이해하지만 거래량 회복 가능성은 의문입니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가격에 영향을 줄까요??

  • 건축학개론 · 2026년 7월 24일

    '받은만큼 한다'는게 공인중개사의 프로의식에 대한 미담인가 보다 예상하고 들어왔는데.... 진상손님의 갑질에 대한 이야기였군요. 세상에는 실제로 이보다 더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런 사람들은 아마 지금까지도 자신들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고 궁시렁궁시렁 남탓을 하고있을 겁니다. 그래도 감정에 휩쓸리지않고 침착하게 잘 대처하셨어요.

  • 말차우유 · 2026년 7월 24일

    호의가 권리인 줄 아는 사람한테는 매운맛을 보여주는 게 답이에요. 괜히 마음 상하면서 상대할 필요 없습니다. 사이다 대응 잘하셨어요!

  • 스위티자몽 · 2026년 7월 24일

    어딜가든 참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있어요. ㅜ

    예의 없는 사람 상대하느라 그동안 맘고생 많으셨습니다. 굽히고 들어 갈 필요 없죠.

  • 어느여름 · 2026년 7월 24일

    최소한의 존중도 없는 사람에게 사이다 대처하신 모습에 마음이 뻥 뚫리네요. 중개사라는 전문직업인의 역할과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 포근포근쿠키 · 2026년 7월 30일

    진짜 호의가 권리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요즘 너무 심각해요.. 진짜 정 없이 강경하게 대응하는 게 제일 좋은 듯 해요.

  • 효쥬님 · 2026년 8월 3일

    왜이렇게 예의가 없는 사람들이 많아진건지.. 우리나라는 그래도 예의는 있는 나라였는데..ㅠㅠ

  • 호잇 · 2026년 8월 5일

    예의가 없어진 부들도 많은거 같아요 ㅠㅠ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알려주는 사람이 너무너무 절실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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