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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억 로또' 용산 리모델링 단지에 숨은 함정

보더콜리읽는 데 약 3

이촌르엘 조감도.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서 오랜만에 굵직한 분양 소식이 나왔습니다. 롯데건설이 이촌 현대아파트를 리모델링한 '이촌 르엘' 88가구의 일반분양에 나섭니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돼 전용 122㎡ 기준 분양가가 약 32억원대로 결정됐고, 인근 래미안 첼리투스 전용 124㎡ 시세가 50억원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20억원에 가까운 시세차익이 기대됩니다. 용산 첫 리모델링 단지라는 상징성까지 더해지면서 시장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그러나 입주자모집공고문을 꼼꼼히 읽은 사람이라면 숫자 뒤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리모델링 사업을 가능케 한 각종 규제 완화가 역설적으로 입주민의 주거 환경을 해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습니다. 함정이 있는 로또인 셈입니다.

상한제가 만든 기이한 로또

상한제 로또라는 수식어는 맞지만, 이 복권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처음부터 극소수입니다. 25억원을 초과하는 주택에는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2억원에 불과합니다. 취득세와 옵션 비용까지 고려하면 최소 30억원 이상의 현금을 손에 쥐고 있어야 청약에 나설 수 있습니다. 청약통장 없이도 신청 가능한 물량이 포함됐지만, 실상은 현금 부자들만의 리그가 된 셈입니다.

이촌르엘 106㎡ 평면도.

이촌 르엘은 이촌동 첫 리모델링 단지이기도 합니다. 이촌 코오롱, 강촌, 한가람 등 인근 4개 단지가 리모델링을 추진하거나 검토 중인 상황에서, 이번 분양의 성적은 이촌동 리모델링 시장 전반의 방향을 결정지을 가늠자가 될 것입니다.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입주자모집공고문에 명시된 리모델링 사업의 특례 조항입니다. 공고문은 "당 사업은 리모델링 사업으로 관련 법규 및 인허가 등에 따라 건축선 지정, 건폐율, 용적률, 대지 안의 공지, 일조 확보를 위한 건축물의 높이 제한, 소음방지대책의 수립 및 바닥구조 등과 관련된 사항을 완화 또는 적용의 배제를 받았다"고 직접 밝힙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문장에서 "이에 따라 일부 세대는 프라이버시 침해, 조망 간섭, 일조권 침해 등 사생활 침해 및 소음, 진동 등 환경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시공사가 공식 분양 문서에 스스로 이런 경고를 넣은 단지는 흔하지 않습니다. 리모델링을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가 풀어준 규제들이 결국 입주민의 몫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집을 넓히기 위해 법적 최소 거리나 높이 제한을 무너뜨리면서 생기는 필연적인 부작용입니다.

평면은 좁고 단지는 빽빽

시세차익에 눈이 가기 전에 리모델링이라는 건축 방식이 가진 구조적 한계를 직시해야 합니다. 세대 사이 내력벽을 철거할 수 없어 신축 재건축처럼 자유로운 평면 설계가 불가능합니다. 재건축 아파트는 가로세로 비율이 대개 1대 0.8 정도로 안정적인 판상형 구조를 띠지만, 리모델링은 1대 1.9 정도에 달하는 세로로 긴 동굴형 평면이 나옵니다. 거실과 주방은 뒤로 길게 늘어지고, 발코니를 확장해 방 하나를 더 만들더라도 채광이 닿지 않는 어두운 공간이 생기기 쉽습니다.

평면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촌 르엘의 건폐율은 35.5%입니다. 대지면적 3만6821㎡ 중 건축면적이 1만3023㎡를 차지합니다. 래미안 첼리투스는 건폐율이 약 15%, 아크로리버파크와 래미안 원베일리는 19% 수준입니다. 서울 아파트 단지들이 대부분 건폐율 20% 내외로 지어지는 만큼 20% 이하면 낮은 편으로 평가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촌 르엘의 35.5%는 최고급 재건축 단지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건폐율이 높다는 것은 단지 안에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다는 의미입니다. 동과 동 사이의 거리가 좁아지고, 지상 녹지 공간과 조경 면적이 줄어듭니다. 앞서 살펴본 규제 완화와 맞물리면, 창문을 열었을 때 앞 동 뒷모습만 보이거나 사생활이 노출되는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습니다. 재건축이라면 대지 위에 건물 배치를 처음부터 새로 설계해 건폐율을 낮출 수 있지만, 리모델링은 그 자유가 없습니다.

공고문에 공시된 분양원가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항목이 있습니다. 건축 가산비 합계 약 298억원 중 '사업계획승인조건에 따른 가산비용'이 191억8000만원으로 전체의 64%를 차지합니다. 이 항목은 서울시·용산구가 사업계획을 승인하면서 조건으로 단 사항들을 이행하는 데 드는 비용입니다.

그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공고문을 보면 스카이카페, 키즈실내놀이터 등 커뮤니티시설 일부가 '지역개방 적용 대상 시설'로 지정돼 단지 외부 주민도 이용할 수 있다고 명시됩니다. 이를 짓는 데 드는 비용이 가산비로 반영된 것입니다. 또한 공부상 대지면적 3만7899㎡ 중 1078㎡를 공공공지로 기부채납해 실사용 대지면적이 3만6821㎡로 줄었습니다. 서울시 건축심의에서 요구한 개방형 발코니, 커튼월룩 특화외장 등의 조건도 추가 비용을 만들었습니다.

결국 서울시와 용산구로부터 규제를 완화받은 대가로 지역에 개방하는 시설을 짓고, 땅 일부를 내주고, 특화 외관을 설계해야 했던 비용을 수분양자가 분양가를 통해 부담하는 구조입니다. 상한제 로또의 이면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분당더샵센트로 리모델링 단지의 길쭉한 평면도.

송파 리모델링의 굴욕

수요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시세 상승의 한계입니다. 2024년 1월 준공된 송파 더플래티넘은 2022년 일반분양 당시 29가구 모집에 7만5000여 명이 청약해 평균 2599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입주 이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전용 106㎡가 최근 16억8000만~17억8000만원선에 실거래되며 분양가보다 오히려 가격이 떨어진 마이너스 프리미엄 매물이 나오고 있습니다. 잠실 더샵루벤 전용 106㎡도 23억6000만~26억원선에 머물며 가격이 정체돼 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잠실엘스 전용 84㎡는 31억~37억원대를 오가며 신고가를 경신 중입니다.

재건축 대단지는 질주하는데 리모델링 단지는 멈춰 선 이유는 명확합니다. 동굴형 평면의 한계, 높은 건폐율로 인한 주거 질 저하, 그리고 입주자모집공고문에 명시된 각종 환경권 침해 가능성을 시장이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촌 르엘 청약을 고민하는 수요자라면 세 가지를 자문해봐야 합니다.

첫째, 공고문 속 유의사항을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규제 완화로 인해 내 집의 일조권이나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다는 점을 시공사가 공식 문서에서 직접 밝히고 있습니다. 26억 시세차익만 볼 것이 아니라 실제 거주 시의 불편함을 감당할 수 있는지 먼저 따져야 합니다.

둘째, 일반분양 물량의 위치를 확인해야 합니다. 신축 별동에 배치되는 물량은 상대적으로 평면이 우수하지만, 단지 전체의 건폐율 35.5%와 규제 완화에 따른 환경 문제는 어느 동에 살든 공동으로 겪게 됩니다.

셋째, 실거주 중심의 장기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단기 투자 수익을 노리기엔 초기 자금 부담이 너무 크고, 입주 후 환금성이 재건축 대단지만큼 원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30억원이면 강남권 알짜 재건축 조합원 지위를 사거나 다른 우량 자산에 분산할 수 있는 금액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촌 르엘은 용산이라는 최상급 입지와 리모델링이라는 구조적 한계가 충돌하는 시험대입니다. 화려한 숫자 뒤에는 규제 완화가 불러온 주거 환경의 그늘, 동굴형 평면과 빽빽한 건폐율, 그리고 선행 단지들의 냉혹한 시세 선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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