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제가 이 계약 틀어버립니다!
양콩읽는 데 약 4분
호떡집 불난 것처럼 바쁜 금요일이었다.
잔금은 1건에다 며칠 전 집 본 손님이 계약금을 먼저 보내고 싶다며 들락거렸고,
또 1년 전 집을 계약해드렸던 손님이 다시 집을 구해달라고 찾아와서 물건 찾아 이리저리 돌리고,,,
그 사이사이 중개사 두 분이 전화하셨는데 한 분은 매매 잔금인데 매수인이 안 나타났는데 어째야 하냐, 또 한 분은 전세계약을 해야 하는데 소유자가 외국 나가서 소식이 끊긴 지 오래라는데 우째야 하냐....
성격 좋은 척 하느라고 이래저래 상담도 하고 나니 뒷목도 뻐근한데...
그 정신 없는 틈을 타서 들어온 남녀가 있었다.
여성분은 50대 후반, 남성분은 한눈에 봐도 빛이 나는 외모의 화이트칼라 30대 중반쯤?
여성분이 말했다.
"어제 전화드렸던...해남서 왔어요"
아~~ 며칠 전부터 해남에서 직장 관계로 올라와야 한다며 두 세번 통화한 분이다.
인근에 신축한 빌라를 분양 받으려 했다가 대출 등 문제가 복잡해서 월세를 알아본다고 했다.
그런데 월차임을 부담스러워 하길래 보증금 대출을 설명해주고 은행대출 상담사와 상담하게 연결해주었더니 "한번 가마~" 하던 분이었다.
집을 보여주고 마음에 들어해서 계약을 하려던 차 신용이 안 좋다 하여서, 계약 체결 이후에 보증금 대출 안된다고 계약을 해제할 순 없으니 미리 대출 가능 여부를 확실하게 확인해보자 권유하고 은행대출 상담사와 다시 연결해주는 찰나 찰나에....이 잘생긴 남자가 중간중간 끼어들었다.
"그럼 이 집으로 결정하시겠어요? 집이 깨끗하긴 하네요..."
뭔가 이상타.... 아들인가? 아들이 엄마 집 구하는데 예의가 너무나 바르도다....
은행대출 상담사와 연결해서 몇가지 확인하고 조회하는 사이 두 번인가 이 남자가 여성분을 밖으로 불러냈다. 나가서 이야기 하고 여성분이 먼저 들어오길래
"저 분은 누구신가요? 아드님? 사위? 왜 나가서?"
했더니...빌라 분양팀장이라고 했다. 빌라를 분양받으라 했는데 대출이 필요한 만큼 안 나와서 포기하고, 계속 전화 상담했던 중개사를 찾아가겠다 했더니 손수 태워다 준다며 따라왔다고 한다. 온김에 집도 같이 봐주고....
"분양팀장이? 왜요?"
"아마 내가 이 아파트를 마음에 안 들어하면 다시 빌라 월세라도 계약하라 하려고 그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집 마음에 든다 했더니 그럼 본인은 그냥 가겠대요"
그래서 갔나 부나 하고 있는데, 임대인과 계약 시간을 잡느라 정신 없는 와중에 남자분이 다시 들어오더니, 현재 은행 금리를 물었다. 흠...이왕 중개사무소 온 김에 자기도 집을 구하려고 하나?

일이 잘 되어 다음 주 월요일쯤 계약하기로 하고 마무리하는데,
여성분에게 차에 먼저 타 있으라 하더니 남자분이 다시 들어와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팔짱을 낀채 말했다.
"수수료가 얼마인가요?"
"무슨 수수료요?"
"부동산비요"
아 중개보수... 요율을 이야기 했더니... 팔짱을 풀고 한발짝 다가섰다.
"중개사님! 제가 저 분 모시고 오고 집도 보여드리고 했으니 손님 중개보수 저 주세요!"
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사전에 이야기도 없었고,
어느 중개사가 공동중개하자 해도 사전에 중개사인 거 밝히지 않으면 곤란할 판에
지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했더니...
"그럼 제가 이 계약 틀어버립니다!"
헐....
저걸 협박이라고~!
'너 얼굴은 잘생겼는데 사람 보는 눈은 없구나'
"그러세요! 틀어버리세요!
이 집 수리되고 저렴한 집이라 얼마든지 계약하실 분 많아요. 당장 틀어버리세요! "
그랬더니 자기가 손님 모시고 집까지 봤는데 너무 한 거 아니냐고 부동산들 공동중개도 많이 한다던데 그냥 중개보수 주면 안되냐고 하길래
"내가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어요. 내가 중개보수를 주면 다른 중개사들한테 양심에 찔려서....내가 주면 다른 중개사들한테도 똑같이 이런 식으로 협박할 거 아니에요. 더구나 저 손님은 나랑 계속 이 물건에 대해 통화하고 상담했던 분인데....그러니까 그냥 계약 틀어버리세요!"
하고는... 내 명함을 꺼내 남자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 명함 들고 가서 내 이름 외우세요!
어디든 우리 관내에 있는 중개사무소에 가서 이렇게 중간에 중개보수 달라고 끼어들기만 하세요! 내가 무등록 중개로 신고할테니!
그리고 공동중개 하고 싶으면 자격증 따서 개설등록 하고 인장 들고 오세요!"
했더니 바로 표정을 바꾸고 두 손을 모았다.
내가 언제 다 달랬냐 그냥 물어본 거다. 그럼 손님 모시고 다니느라 힘들었는데 얼마까지 줄 수 있냐고...
하...급 안쓰러운 느낌. 이 사람도 뉘집 아들이거나 뉘집 가장일텐데....
"중개보수는 받을 조건, 자격이 안되니까 한푼도 못주고요,,,날도 추운데 손님한테 서비스 하느라고 고생하셨고, 불경기에 빌라 분양하느라 애쓰신다는 의미로, 식사비 정도는 챙겨 줄 수 있어요"
했더니 계좌를 적어주고 갔다.
나는 계좌를 받아놓고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아… 또 내가 실수했구나.’
잘생긴 얼굴에 마음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고, 사람이라는 존재가 원래 이렇게 순간적으로 흔들리기도 한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것이다.
무등록 중개는 명백한 불법이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
겉모습이 반듯하든, 말투가 공손하든, 어떤 ‘선의’를 포장하든 중개를 하고 싶다면
누구나 똑같이 겪는 시험, 공부, 개설등록, 책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당연한 절차를 건너뛰고 중간에서 ‘수수료’를 가로채려는 순간부터 그건 생계를 위협하는 범죄다.
빌라를 분양하든, 임차인을 태워오든, 그들의 사정을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정당한 노동에는 정당한 자격이 필요하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다음에는 누가 잘생겼든, 누가 손을 모으며 부탁하든
"한푼도 못 드립니다. 자격 갖추고 오세요!"
이 한 줄을 잊지 말아야겠다.
댓글 12
팀꼬레아 · 2025년 11월 24일
곰탱이 · 2025년 11월 24일
서비스정신이 투철한 줄 알았더니 투잡정신이네 ㅋㅋㅋ
세르미온느 · 2025년 11월 24일
차라리 사모님한테 교통비를 달라고해라
시월의꽃 · 2025년 11월 24일
계약을 트는게 아니라 니놈 주리를 틀어야할듯
미스터선샤인 · 2025년 11월 24일
하이엔드 오피, 신축 빌라 등등 조금 규모 있다 하면 키크고 멀끔한 사람들이 상담해주고 하긴 하더라고요 ㅇㅇ팀장 이렇게 해서
말차우유 · 2025년 12월 5일
별 이상한 사람이 다 있네요. 자기가 데리고 왔으니 중개 보수를 달라는 건 어느 나라 법인지? 계약을 틀어버리겠다는 협박이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웃기네요.
스위티자몽 · 2025년 12월 5일
중개보수 달라고 끼어드는 사람이 있군요.. 애초에 저럴 작정으로 같이 온 걸까요?? 그와중에 식사비라도 받겠다고 계좌 적고 갔다는 게 참 뻔뻔하다고 해야 할지...
호잇 · 2025년 12월 5일
계약트는게 무슨 벼슬처럼 ... ㅋㅋ
오늘을살자 · 2025년 12월 14일
와 뻔뻔하네요 진짜 중개어그러지면 자기가 어떻게든 자기수익얻어보려고 호의를 베푼거면서..그런 심보로 무슨 영업을하겠다고
아파트사우루스 회원 · 2025년 12월 17일
와 이런 경우도 있군요; 무등록 중개까지는 백번 이해한다 해도 돈 달라고 뻔뻔하게 요구를 할 줄이야..정말 황당하네요
새우깡 · 2025년 12월 19일
불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장당한 사람들 보면 나쁜 의미로 신기하네요
와사비 · 2025년 12월 20일
뻔뻔한 사람 참 많네요 저런사람들은 타협을 해주면 안될 거 같아요 그게 마먕 쉽진 않겠지만요
함께 보면 좋은 글
6/27 대출 규제가 세금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까?
두꺼비세무사25. 07. 04.

토허제 해제가 집값을 끌어올렸다?
Mr.리퍼비시먼트25. 03. 09.

반포 1·2·4주구, 초저가 공사비 뒷 이야기 (feat. 시공계약과 변경계약의 상관관계)
Mr.리퍼비시먼트24. 09. 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