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금 못 돌려주셨으면 '미안하다'가 아니라 '죄송하다'가 맞습니다
너구리읽는 데 약 3분

"나왔어!"
"뭐가?"
"전세보증금이 나왔다구!"
"엇?!?"
8개월간의 전쟁이 끝났다. 아내인 꼬북이가 자취하던 시절 살던 강서구 까치산역 전셋집의 전세보증보험금이 드디어 지급됐다.
꼬북이는 지난 3월 까치산역 전셋집 계약이 만료됐지만 집주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해 한국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전세보증보험금을 신청했었다. 그리곤 8개월 만에 전세보험금(약 2억3000만원)이 나온 것이다.
꼬북이는 근무 중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전세보험금 지급 소식을 전화로 알렸다. 올해 이것만큼 애타게 기다려온 일이 있었을까. 나도 하던 일을 중단하고 기쁨을 만끽했다.
보험금 심사를 모두가 통과하는 것은 아니기에, 분명 기쁜 일이 맞다. 떼먹을 돈을 다시 찾은 셈이니깐. 헌데 생각해보면 참 우스운 일이다. 2억3000만원이란 돈이 새로 생긴 것도 아닌데..아내인 꼬북이가 냈던 전세보증금이 다시 돌아온 것뿐이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는 지난 8개월간의 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꼬북이가 까치산역 전셋집 계약기간 동안 나와 결혼해 우리 신혼집으로 전입을 하는 바람에 전세보증금 우선변제권을 상실할 뻔한 일
▲대체로 3개월이면 전세보증금이 지급 된다고 생각했지만 3개월이 한참 지난 후에도 보증금이 나오지 않아 조마조마했던 일
▲집주인과 꼬북이의 살벌한 감정싸움
▲담당사무관이 보완서류를 내라고 연락이 왔고 제출했지만 한달이 지나도록 메일을 읽지 않은 이야기
▲속이 터진 꼬북이가 직접 지난 8월 허그 동부관리센터에 방문했지만 담당 사무관이 마침! 휴가를 간 이야기 등등..
모든 일은 '직접 경험하는 것이 가장 큰 배움'이라는 말을 제대로 깨달은 8개월이었던 것 같다.


꼬북이는 2억3000만원 보증금을 입금 받고 절반가량을 은행 대출금으로 상환했다. 상환하면서 전세계약 중도 해지금만 47만원이 나왔다ㅜ 8개월 동안 매달 대출금 이자도 꼬박꼬박 냈다. 지난 3월에 집주인에게 대출 이자를 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었다.(알아봤더니 이자 청구 소송은 너무 복잡했다) 당시 집주인은 요새 자기가 지방세도 못낼 정도로 어렵다고 토로했단다;;
집주인은 앞으로 후속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울 실정이다. 정부가 공시지가율을 126%까지 올렸기 때문이다. 공시가의 126%(공시가×140%×90%)까지만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가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빌라는 140%다.
예를 들어 공시가격 1억원인 주택의 경우 기존엔 보증금 1억5000만원까지 반환보증 가입이 가능했으나, 제도 변경 이후엔 보증금 1억2600만원까지만 가입할 수 있게 됐다. 까치산역 전셋집의 전세보증금은 2억3000만원으로 공시지가를 감안하면 공시지가율 126%에 걸린다. 보험가입이 가능한 주택이 되게 하려면 보증금을 더 낮춰야 한다.
꼬북이가 입주할 당시에는 허그 보험가입이 됐지만 이제는 불가능한 집이 됐다. 요즘은 전세사기 우려로 허그 보험가입이 되지 않는 집은 사실상 죽은 집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세입자도 입주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꼬북이는 집주인에게 11월 10일 전세보증금 지급 사실을 알리며 정리 문자를 보냈다. 욕을 한 바가지 하려다 참았단다.
"전셋집 방문해 남은 공과금 요금 모두 납부했습니다. 그리고 보증금이 지급됐습니다. 집 입주 시 수령한 카드키도 없고 다 정리됐습니다"라고 보냈다. 그러자 집주인은 "네 알겠습니다, 미안합니다-ㅠ" 라고 짧은 답변이 왔단다.
집주인의 답 메시지를 본 꼬북이는 나에게 "자기 때문에 8개월을 개고생을 했는데..사과는 매우 짧네..어이가 없네!"라며 소리쳤다.
나는 집주인의 메시지를 보고 '미안한 마음이 있었으면 조금 더 보증금 반환을 위해 노력해주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제 다시 엮일 일은 없는 사이지만 저 사람도 그저 '전세 열풍 속 수익이라도 내보고자 작은 오피스텔 빌라의 임대인이 됐을 텐데, 앞으로 어쩌시려나'라는 작은 걱정도 들었다.
그런데..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소동(민폐)에 대한 답변으로는 '미안하다'보다는 '죄송하다'가 맞지 않나. 나이가 60대인 집주인은 우리 부부가 상대적으로 어리다 생각해 아랫사람 대하듯 한 말일 수도 있다. 또 그동안 꼬북이와 여러 감정싸움을 겪으며 집주인도 우리와의 관계에 대해 지쳐 내뱉은 말이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2억3000만원이라는 목돈을 돌려주지 못한 사람이 8개월만에 고군분투 끝에 보험금을 받은 사람에게 표현할 단어로는 적절하지 아닌 것 같다. '아 이 사람은 여전히 자기가 억울하구나. 죄송할 정도의 일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주인은 까치산역 전셋집을 아마도 경매로 집을 넘기던, 보증금을 낮춰 보험가입이 가능한 집으로 만들지 않을까. 앞으로의 일은 집주인이 알아서 할 문제지만..여하튼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전해 듣고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요즘은 '지금 투자하지 않는 자 바보'라는 말이 돌만큼 증시가 불장이다. 아내는 마침 경제지에서 증권부를 담당하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요즘 매일 주식얘기를 하며 하루를 보낼 정도로 관심이 많다.
지난 3월에 예정대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았다면 꼬북이의 투자 시드머니가 더욱 상승했을 것이고 지금보다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다. 중도해지금에 이자에,, 투자 기회 손실까지.. 얼마나 많은 기회비용을 날린 것일까. 돈이란 건 제때 주머니에 있어줘야 좋은 타이밍에 쓸 수도 있는 것 같다.
지금 이시간에도 많은 임대인들이 정부 정책 변경을 이유로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것 같다'고 호소하고 본인들은 억울해한다. "보증보험 들었으니 괜찮은 것 아니냐, 청구하라"라고 쉽게 말하던 꼬북이의 전셋집 집주인의 말이 생각난다.
전세보증금 미반환의 진짜 문제는 그들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 사실 자체 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뺏는 여러가지 다른 기회비용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나중에 보험금을 받게된다고 해서 '집주인의 잘못'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국의 집주인들이 더이상 세입자에게 '미안할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집주인님들, "제발 보증금 돌려줄 시기에는 미리미리 준비 좀 해주세요!"
댓글 17
한지와영주 · 2025년 11월 17일
고생하셨어요! 그래도 어쨋든 해결됐으니까 축하는 드리지만 우리나라 전세 제도는 정말 문제가 많네요
방방곡곡 · 2025년 11월 18일
그동안 마음고생 많으셨을텐데 늦게나마 돌려받아서 다행이네요. 보증금 돌려줄 능력도 안되는 사람이 여기 저기 전세를 놓는 건 문제가 많은 거 같아요.
희수니 · 2025년 11월 24일
드디어 받으셨군요! 진짜 전세사기 한번 휘말리면 머리털 다 빠지는거 순간임...
깡정 · 2025년 11월 24일
kbs 아나운서 남현종씨도 전세사기 당했다고,,
보증금 돌려주지 못하면 사기로 감방 보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초보 · 2025년 11월 24일
이자도 받아내야되지 않나요
haran · 2025년 11월 24일
믿을사람 하나 없어요 검찰수사관도 전세사기 치는 마당에 말이죠
정수빈 · 2025년 11월 24일
청년안심주택도 전세사기 있잖아요
호잇 · 2025년 12월 2일
보험무조건 들라고 하더라구요 ㅠㅠㅠ 진짜 사기 당하면 너무 마음아파요
눈사라밍 · 2025년 12월 4일
저도 주변에도 사기당한 케이스를 봐서 무조건 보험 가입해놨었어요ㅠ
빅토리아 · 2025년 12월 5일
진짜 전세사기 떄문에 . ㅠㅠ 너무 .. ㅠ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많은거 같아요 ㅠㅠㅠㅠ. 고생많으셧어요
아기새 · 2025년 12월 5일
전세 보증금떄문에 .. 진짜 . ㅠㅠ 골치아픈경우가 너무 많은거같아요 ㅠㅠ. 점점 더 많아지는거같아요
말차우유 · 2025년 12월 5일
8개월 동안 노심초사하며 전전긍긍하셨을 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래도 노력 끝에 전세보증금을 받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스위티자몽 · 2025년 12월 5일
지방세를 못 낼 정도로 어려우면 세입자 사정은 나 몰라라 해도 되는 건가요? 미안하다고 말로만 하면 끝인 건지... 그래도 잘 해결되셔서 다행이에요!
새우깡 · 2025년 12월 19일
진짜 세입자 입장에선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죄송하다가 아니라 미안하다가 나오는건지 모르겠네요
와사비 · 2025년 12월 20일
그래도 8개월 걸려서 돌려 받으셨다니 참다행이네요 집주인분들도 미리미리 이런일이 없도록 해주는 게 중요할 거 같아요
오늘을살자 · 2025년 12월 23일
와 맘고생심하셨겠어요 전입신고를하면 안됐던거군요 진짜 모르면 안되요 ㅜ
아기새 · 2026년 1월 22일
전세사기 정말 너무 많죠 ㅠㅠㅠ 전세보증금 사기는 정말 끊임 없이 발생하네요 에휴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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