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사우루스

어느 할머니께 보낸 마지막 선물

양콩읽는 데 약 4

11월 말, 아파트 한켠에 알뜰장이 열렸다.

둘러보니 마침 대봉이 있길래 배달을 요청했다.

"또 그 할머니댁?"

두 세번 배달시킨 것 같은데.... 과일가게 사장님 기억력이 좋다.

그 할머니 최여사님과는 10여 년 전 악연(?)으로 만났다.

"사장 나와 봐! 어떤 년이야!"

키 150cm이 될까말까 하고 한쪽 눈이 흰자위로 덮인 뽀글머리 할머니가, 문을 소리나게 밀치더니 냅다 욕부터 퍼부었다.

며칠 전 어느 부동산 중개사가 아파트 급매물을 물어보더니 계약한다 해서, 마침 매도인이 전화를 안 받길래 좀 기다리라 했는데 그새 사단이 난 모양이었다.

당시에는 업(up), 다운(down) 계약이 나름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불법, 편법 계약은 아예 손을 안 대는 스타일이라 단호히 거절했는데, 중개보조원이 계약금을 먼저 받아놓고서는 업계약서를 써주겠다고 약속했단다.

중개사라면 아예 처음부터 거절했겠지만, 할머니와 나름 친분이 있다던 중개보조원이 앞뒤 일머리도 모르고 계약 욕심에 사고를 친 것이다.

어이가 없어서..'그러게 왜 중개사도 아닌 사람이 상의도 없이 계약금부터 받았느냐. '그런 계약은 절대 안 하니까 잘 해결하라!' 고 끊은 참인데, 이 난봉꾼 할머니가 그 매수인이었던 것이다. 계약금을 이미 건넸으니 배액배상을 하라고 난리를 친다고 했다.

중개보조원이 난처해 어쩔줄 모르자 내친김에 나한테까지 쫓아들어온 것이다.

계약금을 배액배상 하든지 업계약서를 써주든지 선택을 하라고!

아니면 당장 구청에 고발하겠다고, 세금은 잘 내고 있느냐 어쩌냐

니가 그렇게 법대로 일 잘하고 있느냐. 부동산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곳 있느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게 너무 어이가 없어서 대꾸 안 하고 듣고만 있다가 차키를 빼 들고 서서

"가시죠~ 모셔다 드릴게요~

구청 먼저 들러서 민원 넣으시고

그 다음 세무서에 내려서 신고하세요~!"

했더니 눈만 꿈뻑거리는 사이, 중개보조원이 뛰어들어와서 여기서 이러시면 안된다고 끌고 나갔다.

죽이든 살리든 알아서 잘 해결하겠지 하고 잊었는데,

이틀 후 갑자기 웬 남자가 박스 하나를 낑낑대며 들고 들어와 사무실 한쪽에 내려놓았다.

바로 뒤이어 그 할머니, 최여사님이 쭈뼛쭈뼛 들어왔다.

"김장 안했재? 한 김에 좀 더 했어. 먹어.

그리고 연천쪽 땅좀 하나 알아봐줘."

그렇게 악연이 인연으로 되어서, 연천에 임야도 사고 김포에 분양권도 사고

조그만 농지도 사고....

보기엔 진짜 성깔 사나운 시골할머니였는데, 나름 챙겨둔 돈도 있고 부동산에 대한 안목도 있어서

본인이 지정하는 위치의 물건을 찾아주면 그닥 까다롭지 않게 매입 결정을 하였다.

그리고는 괜찮다고 해도 항상 중개보수와 함께 먹거리 등 선물도 따로 챙겨주었다..

최여사님은 젊어서부터 부동산 투자에 눈을 떠서 샀다 팔았다 하며 돈을 모았고, 그래서 자식들도 남부럽지 않게 키웠다고 자랑하였는데... 돈은 좀 벌었는지 모르겠지만 자식농사는 영 아니었다.

계약 시마다 딸들이 동행하는데 엄마한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법이 없고, 서로 좋은 건 자기가 갖겠다고 자매 간에도 한겨울 칼바람같은 날선 대화가 대부분이었다.

할아버지가 암에 걸려 투병하실 때도 최여사님 혼자 뒷수발하다가 장례 치르고 몸져 눕기도 했다. 외모로 보아 연세가 70 중반은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계약서 쓸 때 신분증을 보니 겨우 60세.

딸자식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여유있게 꾸미고 다니는데, 최여사님은 독거노인이라 해도 믿어질만큼 낡고 헤진 옷차림에 제때 염색이나 파마를 안해 희멀겋고 부스스한 헤어스타일.... 돈은 있으나 자신을 위해 써본 적도, 쓸 줄도 모르는 푸석푸석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언젠가 손님이 가져다 준 대봉 한 개를 건넸더니, 평소엔 무얼 건네도 손사래 치던 양반이 유난히 반색하며 받았다. 대봉만으로 몇일 끼니 때울 정도로 좋아한다고 했다.

딸들도 그걸 알면서도 집 사달라, 돈 달라 한 적은 있어도 여태 대봉 한 개 사다준 적이 없다고 못된 년들이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최여사님이 저녁 늦게 전화해서

"원룸 한 개 얻어줘. 바로 들어갈 걸로..."

하길래 갑자기 웬 원룸이냐 했더니

인근 도시에 살던 아들이 며칠 전에 자살을 해서 화장시키고 방금 돌아왔다고 했다.

자살하기 며칠 전에 며느리랑 같이 와서

"누나들은 왜 집 사주고 상가 사주고 나는 아무것도 안 사줘요? 나도 사주세요!"

하길래 알았다고 했는데, 두 딸이 온갖 포악을 부리면서 방해하는 바람에 안 사준다고 했더니 ...비관한 아들이 그만 술 먹고 자살했다고 한다.

그동안 드센 딸들 눈치보느라 아들한테 제대로 못 해준 게 한이 된다고,

원룸 하나 얻어서 아들에 대한 기도를 하고 싶다고 했다.

다음 날 원룸을 계약해드리고 대봉 한 박스를 사서 넣어드렸다.

여기저기 휘젓고 잘 다니던 최여사님은 남편에 아들까지 가니 기운이 쇠해졌는지 연락을 주고받는 횟수가 갈수록 줄었다.

그러다 또 가을이 되어 마침 아파트 장터에 놓인 대봉을 보고 생각나서

배달을 시킨 것인데, 그날 저녁 둘째 딸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엄마가 중개사님 보고 가고 싶으셨나보네...

내일이 발인이에요. 잠깐 집에 들렀다가 대봉이 문 앞에 놓여있길래....."

최여사님은 거의 매일 원룸의 아들 위패 앞에서 기도하는 세월을 보냈는데,

처음엔 한 두 번 들여다보거나 만류하던 딸들도 결국 발길이 끊어졌다. 원룸 관리인이 어느날 며칠째 사람이 드나드는 인기척이 없어 문을 따고 들어가 보니......

가진 것은 남부럽지 않았으나

결코 행복하지도 평안하지도 않았던 최여사님의

건조한 인생이 가슴을 후벼팠다.

나라도 한번 들여다볼 걸....

잘 계시나 궁금해질 때 나라도 한번 들여다볼 걸....

대봉도 진즉 사서 들고 나라도 한번 들여다볼 걸.....

돈밖에 모르는 독한 딸년들 사이에서 어찌 사나

가서 험담이라도 들어드릴 걸...

심장에 짠소금이 뿌려진 듯 쓰라려서 일어서 나오는데 둘째 딸이 졸졸 따라나왔다.

"어머니 기일에는 잊지 말고 대봉 좀 사서 올려드리세요."

했더니 눈만 껌뻑껌뻑 하길래 그냥 돌아나왔다.

부동산을 십 수년 하다 보니

가장 행복한 사람이 돈 많은 사람이 아니고,

가장 불행한 사람이 돈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돈이 있어서 화목이 깨진 경우가 더 많았고,

행복을 가로막는 난관은 늘 돈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절대 변함 없는 진리!

왜 다 가진 사람은 없는 걸까?

돈을 가졌으면 건강을 잃기도 하고

돈도 건강도 가졌으면 행복할 틈이 없다.

다 가지면 좋겠지만 그게 불가능한 일이라면 돈도 건강도 아니고 딱 하나!

죽는 순간까지 외롭지 않는 걸 선택하고 싶다.

#중개에세이 #대봉 #부모 #부동산 #공인중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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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4

  • 숲속 · 2025년 5월 28일

    고마운줄모르는 자식한테는 재산 물려줄 필요 없다

  • 웃으면된다고생각해 · 2025년 5월 29일

    저런것들도 자식이라고 ㅉㅉ 부모가슴에 대못박고 그 하나도 정상적인게 없네 얼마나 외로우셨을꼬 그 할머님은 중개사님덕분에 따뜻했을거에요

  • 나안아... · 2025년 5월 29일

    원래 어르신들은 힘들게 살아오셨을수록 엄청나게 속된말로 드세시더라고요,,그렇게 애지중지 자식들을 키우셨는데,,가실때도 외롭게 가셨다니 너무 속상하네용,,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 고민중독 · 2025년 5월 29일

    이 글 읽고 할머니한테 전화하고 왔어요 엄청 좋아하시네요 다들 이 김에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전화해보세요. 부모님과 떨어져 사신다면 부모님도 좋구요

  • 바래기 · 2025년 5월 29일

    좋은 생각이네요. 저도 방금 친정 시댁 다 전화돌렸어요 방금~^^

  • 인생은아름다워 · 2025년 5월 30일

    양콩님 굉장히 좋은 분이시네요 글 읽을때마다 느껴져요

  • 샤인머스캣 · 2025년 5월 31일

    읽는 내내 너무 슬펐어요..😭 저도 바로 할머니한테 전화하고 오늘 잠깐 들르기로 했어요 속상하네요 정말.. 자식 새끼 낳아봤자 소용없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것 같아요...

  • 우린깐부 · 2025년 5월 31일

    양콩님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양콩님은 참~~좋으신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차가운 중개사만 만나봐서 그런지 부럽기도 하네요^^;중개사님 잘만나는것도 복인데~~ㅎㅎㅎ

  • 순한마 · 2025년 6월 1일

    부동산 재테크보다 자식 농사가 더 중요하다

  • 집좀사자 · 2025년 6월 1일

    세상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가족, 자식 농사가 참 중요한 것 같네요. 얼마나 외로우셨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네요.

  • 호우호우 · 2025년 8월 7일

    비슷한 생각이다..가는 길이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

  • 새우깡 · 2025년 9월 8일

    마음이 참 착잡해지네요

  • 와사비 · 2025년 9월 9일

    저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네요 ㅎㅎ..

  • 호잇 · 2025년 10월 10일

    진짜 마음이 아프네요 .. 다시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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