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사우루스

5화 월세 600만 원 집에 사는 그녀들의 삶

엘레이맘읽는 데 약 3

다른 동네와 달리 타운하우스만으로 길 양옆을 꽉채운 타운하우스레인

월세만 600만 원, 그녀들의 삶 속으로

LA 다운타운에서 조금 떨어진 우리 동네는 겉보기엔 그저 평범한 미국 교외 같다. 하지만 귀를 기울이면 영어 속에 일본어, 한국어, 중국어, 스페인어가 자연스레 뒤섞여 들려온다. 처음엔 그저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인 곳이구나 싶었는데, 아이와 함께 공원에 몇 번 다녀오다 보니 이곳만의 색다른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이 동네는 주재원 엄마들이 모여 사는 작은 세상이었다.

도서관 프로그램에서 만난 일본 엄마 아사코는 늘 소박한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다국적 식품회사에서 일하는 남편을 따라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를 거쳐 미국까지 온 그녀는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홀푸드는 비싸서 가지 않는다고 하고, 아시아 사람들에겐 필수품 같은 코스트코 멤버십도 없다고 했다. 옷이나 생활용품이 필요하면 가장 저렴한 월마트나 중고샵을 찾는다고 귀띔한다. 그런 그녀를 우리 집에 초대했는데, 문을 열자마자 “집이 좀 좁은 느낌이네”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방은 두 개지만 각 방의 크기가 제법 넓어서, 내 눈엔 한국의 30평대 아파트와 별 차이 없는 집이었는데 말이다. 놀라서 “그럼 너희 집은 얼마나 넓길래?” 하고 물었더니, “너무 넓어서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찾기 힘들 정도야”라고 아무렇지 않게 답한다.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집이 너무 커서 아이를 찾기 어렵다니, 대체 어떤 곳에 사는 걸까. 알고 보니 그녀는 우리 타운하우스 옆에 위치한 다른 타운하우스단지에 살고 있었다. 같은 게이티드 커뮤니티 안이라도 등급이 확연히 달랐다. 나중에 들은 그녀의 월세는 4,700달러, 우리 돈으로 630만 원이었다.

미국 주거에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주재원 가족들

그 순간부터 그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처음엔 나와 비슷한 집에 살겠거니 했던 생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월세 만 600만 원이라니, 그들은 어떤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걸까.

YMCA 체육 수업에서 만난 튀르키예 엄마 삼라는 겉보기엔 수수함 그 자체였다. 항공사에 다니는 남편을 따라 이탈리아와 우크라이나를 거쳐 미국에 온 그녀는 늘 같은 히잡과 카프탄을 입고 다녔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어떤 사람인지 쉽게 짐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고, 예의 바른 사람이라는 인상이 강해졌다. 자연스레 그녀의 집이 궁금해졌다. 알고 보니 넓은 뒷마당이 딸린 싱글하우스에 살고 있었다. 3살 아들과 아침부터 뒷마당에서 놀다 보니 놀이터는 굳이 자주 가지 않는다고 했다. 회사에서 지원은 받지만 부족한 부분은 자신들이 채운다고 했다. 미국에서 싱글하우스에 살아 볼 기회가 얼마나 되겠냐며 이 정도면 충분히 부담할만하다는 그녀의 월세는 4,500달러, 약 600만 원이었다.

미국 싱글하우스의 앞마당은 조경 담당일 뿐 진짜 마당은 뒷마당이다.

ESL 수업에서 만난 일본 엄마들도 하나같이 월세 4,000달러가 넘는 타운하우스에 살고 있었다. 모두 내가 사는 타운하우스 레인 근처에 흩어져 있었다. 그 중 월세 TOP은 같은 수업을 듣는 한국엄마였다. 그녀의 남편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 주재원으로, 회사에서 지원 받는 월세가 5000달러를 훌쩍 넘었다. 그녀가 사는 곳은 게이티드 커뮤니티 안의 싱글하우스였다. 단독 주택의 안전 문제와 관리 부담을 덜어낸 형태라 인기가 많았지만, 그만큼 넘사벽의 렌트비를 자랑했다. “동료들에게 미국 생활 얘긴 많이 들었지만, 이런 집에 살게 될 줄은 몰랐어요”라는 그녀의 말엔 묘한 설렘이 묻어났다. 한국에선 30평 아파트에 살았던 그녀가 여기선 뒷마당까지 갖춘 집이라니.

주재원 엄마들의 만남의 장소 집 앞 공원

우리 동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일본 주재원 가족들이다. 도요타, 혼다 같은 자동차 기업부터 삿포로, 아지노모토 같은 식품 회사까지, 캘리포니아에 뿌리내린 일본 기업들의 주재원들이 이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일본 기업들은 직원들이 주거 문제로 고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한다. 사전에 선별한 단지 리스트나 회사에서 고용한 중개인을 통해 선택지를 제공한다. 교육 환경이 뛰어나고, 일본 마트 같은 편의 시설이 가까우며, 무엇보다 안전한 곳들 뿐이었다.

타운하우스레인에서 차로 10분정도 가면 나오는 바닷가

아들의 주짓수 학원에서 만난 영국 엄마 맥신은 또 다른 이야기를 풀어냈다. 글로벌 소비재 기업에서 일하는 남편을 따라 라스베가스에서 이곳으로 온 지 얼마 안 됐다고 했다. 그들의 월세 지원 상한은 3000달러로, 나머지는 스스로 부담해야 했다. 라스베가스에 비하면 월세도, 학원비도 다 비싸서 솔직히 만족스럽지만은 않다며 그녀는 살짝 불만을 표현했다. 내가 집을 구할 때 겪었던 고생을 떠올리면, 주재원 엄마들의 비교적 수월한 주거 환경이 부럽기만 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들도 나름의 고민이 있었다. 3년 뒤 떠날 집에 정이 들까 걱정되고, 아이가 미국 친구들과 너무 가까워져 본국으로 돌아가기 싫어할까 두렵고, 남편과 달리 영어가 서툴러 집에만 틀어박혀 지낸 지 1년이 넘었다는 사연까지. 인생은 어디나 양면을 가진 법이다.

브런치카페로 인기있는 집 앞 빵집

가끔 생각한다. 월세 600만 원을 두고 호들갑을 떨지만, 결국 우리 마음은 비슷하다. 아이들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싶고, 낯선 땅에서도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고 싶고, 언젠가 떠날 날을 아쉬워하는 마음. 우리 타운하우스 레인은 어느새 작은 세계 마을이 됐다. 주말 아침 놀이터에서 늘 마주치는 익숙한 얼굴들. 월세가 얼마든, 어느 나라에서 왔든, 여기선 그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일 뿐이다. 다음 주엔 뒷마당이 넓은 한국 엄마 집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기로 했다. 700만 원 짜리 집에서 열리는 파티라니, 하지만 그 진짜 가치는 집값이 아니라 여기서 쌓이는 추억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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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3

  • 이지현 · 2025년 2월 24일

    그사세란 게 이런걸까요?

  • 그래도한걸음 · 2025년 2월 24일

    캬~ 공원 날씨 엄청 좋아보임 하늘도 파랗고 잔디는 푸르고 아이 키우기 딱 좋아보임

  • 노랑나비 · 2025년 2월 24일

    와...월세 600만원... 입이 떠억 벌어집니다 여유가된다면 미국에서 부동산 장사를 해야...

  • 윤미래 · 2025년 2월 24일

    일본은 부자들도 재산 자랑하지 않는 문화가 강하잖아요~ 소박한 생활 유지하는데 독특한 방식으로 사치를 즐기는 걸로 알고 있어요 집 안에 개인 온천을 설치한다거나 와인으로 목욕 즐긴다고 들었던것 같네요 그래서 일본 사람은 겉으로만 봐서 부자인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네요 ^^

  • 앨리스 · 2025년 2월 25일

    그저 부럽네요. 월세 600짜리 주택이라니 ㅠㅠ 나는 언제쯤 그런 곳 살아보려나요

  • 넥스트레벨 · 2025년 2월 26일

    최근에 뉴스 나온거 봤는데요 서울 천만원 이상 초고가 월세 계약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는 구나 싶었어요

  • pipioi · 2025년 2월 26일

    서울과 la의 경제력 차이는 크지 않은데 월세의 차이는 엄청남

  • 이또한지나간다 · 2025년 2월 26일

    한국은 전세 덕에 다른 선진국과 비교했을때 주거비용이 낮죠.

  • 따거객잔 · 2025년 2월 26일

    월 600백...

    어케?

  • 쿠우올라 · 2025년 2월 28일

    다른 나라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세금 때문에 초고가 월세 사는 경우도 많다더라구요

  • 집좀사자 · 2025년 4월 13일

    월세 600만원은 쉽지 않군요. 월급 600만원 받기도 쉽지 않은데, 천조국의 스케일에 놀라고 갑니다. 언젠간 한 번 살아볼 수 있을련지요. 아이 키우기에 너무 좋아보입니다.

  • 아기새 · 2025년 8월 18일

    와 월세 육백은 진짜 너무 쎄네요 .. ㅠㅠㅠ 육백을 어떻ㄱ ㅔ ㅠㅠ버티는건가요 ㅠㅠㅠㅠ비싸

  • 새우깡 · 2025년 10월 11일

    아이들 환경을 위해서 월세 600 집을 선택하는 거였네요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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