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사우루스

부동산 사기를 당했다.

폭풍의 언덕

"딸, 상가 좋은 자리 분양받았다~!"

작년 이맘때쯤 엄마는 아빠와 함께 신축 아파트 단지 내 상가 두 개를 분양받았다. 엄마는 지금 운영하고 있는 가게를 옮기고, 아빠는 번듯하게 사무실을 차려 운영할 요량이었다.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신나 보였다.

"경쟁자가 많았는데 우리가 딱 됐어! 잘 됐지?"

한동안 엄마의 얼굴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아파트 주변에 지하철이 생길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신축 아파트 분양권 피가 1억씩 붙을 때마다 엄마는 더욱 기뻐했다.

"잘 산거 같아. 잘 됐어."

나도 엄마가 딱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랐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 직접 입주할 거라면 임차인을 구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싶었다.

그러나 인생은 언제나 그렇듯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아빠는 사무실을 열지 못하게 됐다. 엄마도 선뜻 가게를 옮길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갖고 있던 구축아파트가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급전이 필요해졌다. 상가를 팔야야 했다.

"딸, 상가 하나를 네가 승계받으면 어떨까?"

엄마는 남에게 팔기엔 너무 아깝다고 했다. 나는 좋다고 했다. 엄마는 나에게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코너 자리 상가를 팔겠다고 했다. 나는 가지고 있던 여유자금을 털어 제값을 치르고 상가를 구매했다. 엄마는 상가를 남에게 팔지 않게 돼서 좋다고 했다.

아파트 입주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갑자기 시행사에서 자금 문제가 생겼다. 입주자들은 제 때 입주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아파트 가격이 바닥을 모르고 내려갔다. 입주가 어영부영 진행되니 상가에 유동인구가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올해는 기대했던 것만큼 월세를 받진 못하겠지만 내년이 되면 상가 가격이 오를 거라고 기대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상가 입주가 시작되고 엄마는 지인과 임대차 계약을 맺기로 했다. 아는 분이라 저렴하게 세를 주겠다고 했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에 물었다.

"엄마가 싸게 내놓으면 내 상가는 어떡해?"

"괜찮아. 어차피 네 상가 자리가 더 좋으니까 아무 상관없을 거야."

"그런가? 음... 알았어."

그러나 며칠 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딸, 그런데... 다시 확인해 보니까 딸한테 코너 자리를 판 게 아니라 안쪽 자리를 팔았네... 엄마도 몰랐어... 미안."

외벽에 번호가 붙기 전에 계약했던 터라 엄마도 헷갈리고, 나도 몰랐었다. 애초에 안쪽 자리를 받았어도 상관없었을 거라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단지 엄마가 내 상가보다 더 좋은 자리의 상가를 저렴한 가격에 세를 준 게 찜찜하긴 했다. 하지만 나는 상가를 공실로 두는 한이 있어도 엄마처럼 월세를 깎고 싶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 나에게 미안해했다. 그래서인지 부동산에 수시로 찾아가서 임차인을 구해달라고 부탁하고, 교차로에 광고도 냈다. 엄마 아빠는 내 상가가 공실이 될까 봐 걱정하고 조급해했다. 나는 그런 모습이 불편했다.

"엄마, 이건 내 상가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 여기저기 광고비 들여가면서 그러지 마."

하지만 엄마는 고개를 내저었다.

"부모가 어떻게 그래? 너야 말로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편하게 있어. 우리가 다 알아서 할게."

며칠이 흘렀다. 새 아파트 단지 내 상가라 그런지 상가를 둘러보러 오고 싶다는 문의 전화가 꽤 많이 왔다. 비록 계약까지 가진 못했지만 언젠간 딱 맞는 주인이 나타날 거라 믿었다. 잠시 월세를 조금 낮출까 살짝 고민이 들었지만 지켜보던 남편은 급히 돈이 필요한 게 아니니 좀 더 기다려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래서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딸, 계약하자는 사람이 나타났어! 딸이 원하던 조건에 딱 맞아. 보증금도, 월세도, 업종도!"

"진짜? 근데 설마 월세에 부가세가 포함된 거 아니지? 그거 특약에 잘 써놔야 해. 대부분 부가세 포함으로 계산하는데 내가 요구하는 월세는 불포함가격이야."

"응, 불포함이래."

"그게 진짜야? 와, 엄마 아빠 대단하네!"

"그렇지? 잘했지? 그동안 체한 것 같았는데 속이 다 후련하네. 이제 좀 살 것 같아."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생각보다 빨리 임차인이 구해져서 나도 기뻤다. 게다가 월세도, 업종도 내가 원하던 거였다.

"역시 주인은 따로 있었나 봐. 기다리길 잘했네."

엄마 아빠는 위임장을 받아 나 대신 임차인과 계약해 주겠다고 했다. 안 그래도 먼 거리를 가야 해서 부담스러웠는데 다 해주신다고 하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고마워, 엄마. 고생하네."

"아냐, 이런 건 엄마 아빠가 해주는 거야."

엄마는 다음 주 월요일에 임차인과 계약하고 계약서를 카톡으로 찍어서 보내주겠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주말을 보냈다.

계약 당일이었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딸~ 아빠가 계약했대. 카톡으로 계약서 보내줄 테니 봐봐."

"오, 엄마! 고생 많았어. 이따가 볼게."

나는 카톡에 온 계약서 사진을 확인했다. 이미 도장까지 찍혀있었다.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 그냥 잘 됐으려니 하고 말았다.

그러나 한 시간 뒤 다시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딸.... 아빠가 일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아빠가... 계약을 잘못했어..."

"응?"

나는 계약서를 확인했다. 특약에 보니 '월차임에 부가세가 포함된 금액이며'라는 문구가 있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엄마... 내가 부가세를 포함한 금액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알지. 나도 알지. 그런데 아빠가 부동산 중개인말만 믿고 도장을 찍었대."

"아니 어떻게 계약서를 안 읽고 도장을 찍을 수가 있어?"

"내 말이. 내가 직접 갔어야 했는데... 하...."

아빠는 부동산에 찾아가 구두계약과 다르게 계약서를 작성하면 어쩌냐고 노발대발했다. 부동산 중개인은 계약을 성사시키고자 우리에게는 부가세를 포함하지 않은 금액이라고 말하고, 임차인에게는 포함한 금액이라고 거짓말했다고 실토했다. 그 대신 복비는 받지 않겠다며 사과했다. 그러나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 금액은 복비에 비할게 아니었다.

엄마의 상심은 꽤 컸다. 딸에게 좋은 계약 조건의 임차인을 구해주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서 속상해했다. 그리고 계약서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아빠에 대한 분노도 상당했다. 엄마는 화를 누르지 못하고 나를 탓하기 시작했다.

"네가 계약하기 전에 아빠랑 전화했으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났을 거 아냐? 아빠랑은 왜 통화를 잘 안 하는 거야? 엄마가 중간에 껴서 이렇게 된 거잖아!"

엄마는 다 나 때문이라고 했다. 가끔 엄마는 화가 날 때 나를 탓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색은 안 하지만 상처가 된다.

"도장까지 찍힌 계약서를 받았는데 내가 뭘 어쩔 수 있었겠어? 미리 나한테 계약서를 보여줬으면 꼼꼼하게 읽어봤겠지. 엄마 내 성격 잘 알잖아... 그리고 이건 중개인이 거짓말해서 일어난 건데 왜 나한테 그래..."

"아 몰라, 지금 열불 나니까 전화 끊어."

엄마는 전화를 끊었다. 화가 많이 난 듯했다. 하지만 속상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엄마 아빠를 탓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위임장을 내주는 순간 어떤 결과도 감내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그거 우리 많이 손해 안 봤어. 신축치고 아주 좋은 가격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그러니까 괜찮아."

"하..... "

엄마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화가 많이 누그러든 듯했다. 그러나 여전히 허탈한 목소리였다.

"어젯밤에 아빠를 한바탕 잡도리하고 오늘 아침엔 밥도 안 차려 줬어. 이번 일을 큰 교훈으로 여기고 서류 볼 때 꼼꼼하게 읽으라고 단단히 얘기했어. 아빠에게 너무 실망이야."

지난밤 엄마 아빠가 어떤 분위기였는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물론 우리 잘못도 있지만 중계인도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러게. 거기서 몇 번 계약을 거기서 했었어서 아빠가 철썩 같이 믿었거든. 임차인을 구해줘서 고맙다고 화분까지 사줬는데... 세상 믿을 게 하나 없네."

"괜찮아. 엄마. 별일 아니었어."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말하는 엄마가 속으로는 울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잘못된 점을 짚어나가기엔 너무 잘못된 것이 많아 덮어두기로 한 것 같다. 아마 속으로 끙끙 앓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는 우리를 속이려는 사람이 넘친다. 피해 가려면 정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는 바가 많아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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