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부른 이 동물, 조선 건국의 기틀되다
고거전읽는 데 약 1분
고려거란전쟁은 고려에서 굶어 죽은 낙타 오십 마리가 결정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만주의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는 고려와 친해지고자 924년 사신 30명과 낙타 50마리를 보내 화친을 요청했다. 그러자 고려는 요에서 온 사신을 유배 보내고 낙타 50마리를 개경의 만부교라는 다리 밑에 묶어 굶겨 죽인 것이다.
낙타 때문에 전쟁을 치른 고려는 훗날 조선에 멸망하고, 조선은 낙타 지명을 유래 삼아 건국의 기틀을 다졌다. 조선 태조가 도읍으로 정한 한양은 풍수상 북현무(북악산)과 남주작(남산), 좌청룡(낙산), 우백호(인왕산)가 어우러진 명당이었다. 개중에 낙산은 한양의 동쪽에 있어서 서쪽의 인왕산과 함께 좌우 용과 호랑이로서 조선을 수호하는 명산이었다.
낙산 지명을 더 거슬러가면 낙타산 혹은 타락(소의 젖·우유)산이 등장한다. 낙산의 모양이 불룩 솟은 낙타의 혹을 닮기도 했거니와 산에는 왕실에 우유를 공급하는 목장이 있어서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초원과 사막지대에 사는 낙타는 산악 지형의 한국에서는 낯선 동물이었지만, 고려 시대 아라비아 상인과 만주의 유목민을 통해 국내에 소개됐던 것으로 추측된다.
난개발이 이뤄지면서 낙산 주변으로 주택과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하더니 과거 낙타의 형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풍광이 크게 훼손됐죠.
뒤늦게 서울시가 수립한 낙산복원 계획에 따라 공원화 사업이 진행되어 지금의 낙산공원은 2002년 7월 개원했다고 하네요.
조선 도읍 한양의 '좌청룡' 낙산은 낙타에서 지명 유래된걸 처음 알았네요^^
댓글 1
antrevolt · 2024년 3월 18일
저때도 낙타의 존재를 알았나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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